컴퓨터로 만든 디지털 배우는 결국 진짜 인간 배우를 대신하게 될까요.
영화 '시몬'의 주인공 타란스키(알 파치노) 감독은 스타 오만에 견디다
못해 완벽한 기술로 몰래 디지털 여배우를 만듭니다. 시몬이라 이름붙인
그 배우를 합성 기술로 영화에 출연시켜 큰 성공을 거두지요. 이후
영화는 만들어진 시몬이 오히려 타란스키를 위협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화려한 부분은 가수로까지 데뷔한 시몬이 10만 청중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입니다. 시몬의 '실체'를 내보이라는 압력 앞에
타란스키가 첨단 기술 도움으로 마치 시몬이 무대에서 실제 노래하는
것처럼 보이게 조작해내는 거지요. 그런데 그 장면은 보이는 것과 실제
이면에 놓인 것이 정확히 반대인 아이러니를 갖고 있습니다. 극중 운집한
10만명의 '진짜' 사람들이 실은 컴퓨터 그래픽의 산물인 반면, 극중
타란스키가 만들어낸 '가짜'로 묘사된 시몬은 사실 캐나다 출신
배우라는 겁니다.
레이첼 로버츠라는 이 배우는 자신의 캐스팅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출연할 수 있었다지요. 제작진은 배역 특성에 맞는 배우를
찾아내느라 수많은 사람들을 살펴보았고요. 까탈스러운 스타들에 지쳐
감독이 원하는대로 '구현'할 수 있는 디지털 배우를 창조한다는 내용과
달리, 실제 이 영화 캐스팅이 어느 작품보다 쉽지 않았다는 역설은 뭘
뜻할까요.
고대 그리스에서 배우가 가면을 쓴 것은 뭔가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잘 보이기 위해서였지요. 뒷줄 관객도 한 눈에 배역의 연령과 신분을
알아봐야 했으니까요. 중국 경극에 출연한 배우들 분장도
마찬가지였고요. 컴퓨터 그래픽을 비롯한 특수효과 역시 그런 가면이나
분장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요. 첨단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건
배우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게 아닐는지요.
무성영화에서 발성영화로 넘어갈 때나, 흑백에서 컬러로 바뀌던 지점처럼
새 테크놀로지가 처음 등장하면 영화인들은 경계심으로 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영화 역사는 기술이 결코 예술의 적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몬'은 얼핏 배우 이미지란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배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만들어낸 허상이 자신을 짓누르는 상황이 계속되자,
타란스키는 시몬이 트림하며 함부로 말하는 인터뷰를 내보냅니다. 돼지들
사이에서 음식물을 주워먹는 장면을 영화에 넣기도 하며 이미지에
먹칠하려 하지요. 하지만 이를 본 대중이 솔직하다고 환호하고, 온 몸을
던져 연기한다고 감탄하며 열광하는 모습은 영화란 장르에서 배우
매력이란 얼마나 결정적인 것인지 그대로 일러줍니다.
영화의 모든 효과를 낱낱이 다 분석해낼지라도 최후까지 해명되지 않은
채 남는 게 배우의 불가사의한 매력일 겁니다. 연기야말로 영화의 핵심
고리일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스타에 대한 대중 환호가 말 그대로
허상인 것만은 아니겠지요. 디지털 캐릭터가 아무리 발전한다하더라도,
배우 고유의 몫은 끝까지 이어질 겁니다. 영화가 그 수명을 다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