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해 직원들에게 브리핑을 받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세
시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 방대한 사업 내용을 들으면서, 아! 이렇게
일에 시달리느라 일찍 저 세상으로 가셨구나 하는 생각이…."

부부는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사이라고 했던가. 지난달 별세한
코미디언 심철호(沈哲湖)씨. 그의 죽음으로 생전에 이끌어온 복지재단
'사랑의 전화'의 주인을 잃게 됐다. 그 빈 자리를 부인
김도(金都·59)씨가 13일 맡았다. '사랑의 전화'의 신임회장이 된
그녀는 이날 오전 6시30분쯤 사무실로 출근했다. 감회를 묻자, 그녀는
눈시울부터 붉혔다.

"남편은 저보다 더 빨리 출근했어요. 새벽에 고속도로를 달리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죠. 임종 순간까지 입가에 맴돌았던
웃음을 잊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제 남편과의 추억을 애써 떨쳐 내려고
합니다. 직원 80여명과 자원봉사자 1500여명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그녀는 지금껏 남편을 내조해온 평범한 주부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그런
만큼 지난 9일 자신을 남편의 유업(遺業)인 '사랑의 전화' 회장직에
추대한다는 임시총회의 결정은 당혹스러웠다. 그때 뇌리를 스쳐간 것은
남편 빈소를 찾았던 500여명의 노숙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모두
'사랑의 전화'에 도움을 받은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당시 이들을 달래느라 '회장님 생전과 다름없이 모실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했지요. 하지만 제가 재단을 이끌어 가리라고는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누군가 창립 정신을 잃지 않고 재단을 꾸려
주기를 원했었죠."

'사랑의 전화'는 81년 사재 1억5000만원을 털어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전화 상담센터로 출발했으나, 이제 무료 노인병원, 급식센터,
노숙자 쉼터, 복지관 등을 갖추게 됐다. 그녀는 "앞으로 저소득층
환자들을 전문의들과 연결해 의료상담을 받게 하는 사업도 벌일
것"이라며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사랑의
전화 이동복지관'을 운영하고 있는 아들 재학(33)도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남편은 밖에서 힘들게 일하면서도 집에서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어요.
1주일에 서너 번은 아예 시장을 보고 귀가하는 자상한 가장이었습니다.
남을 돕는 일이 마냥 즐겁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도
이제 그 기쁨을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