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파치노(62)는 '무서움'이 느껴질 만큼 온몸에서 카리스마를 내뿜는
배우다. 강인한 표범과 외로운 늑대의 상반된 이미지를 겸비한 그는 그
남성적 매력을 주로 어두운 밤 거리를 배경으로 발산해 왔다. 어쩔수
없이 마피아의 암흑 세계에 발들여놓게 되는 마이클 콜레오네역(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 시리즈)으로 그는 영화사에 한 장면을
새겼다.
30여년의 연기 인생 동안 그는 은행강도(개 같은 날의 오후),
전과자(프랭키와 자니·칼리토), 경찰(세르피코·사랑의 파도),
변호사(저스티스·데블스 애드버킷), 퇴역 군인(여인의 향기),
뉴욕시장(시티홀) 등 다양한 역할을 연기했고, 늘 스크린을 압도했다.
알 파치노가 최근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썸니아(15일
개봉ㆍInsomniaㆍ불면증)'에서 베테랑 형사 역을 맡아 또 한번 강렬한
내면 연기를 선보인다. LA 형사 윌 도머는 살인사건 해결을 위해
알래스카에 파견갔다 동료 형사를 살인범으로 오인 사살한다. 백야
속에서 죄책감과 살인범의 협박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며 점점 탈진해가는
처절한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고통스럽게 만든다. 60세를 넘겨서도 바랠
줄 모르는 알파치노 연기력의 원천은 무엇일까. '인썸니아' 국내개봉을
앞두고 알 파치노가 조선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 응했다.
―영화에서 죄책감과 심리적 고통 때문에 점점 초췌해지는 장면들이
대단히 리얼했다. 실제로 불면증을 겪어본 적이 있나?
"예전에 가끔 겪은 적은 있지만, 이번 영화 촬영 동안에는 일부러 잠을
줄였다. 불면증에 나를 빠뜨려보고 싶었다. 영화 연기의 핵심이란
주인공의 심리를 최대한 이해하고 최대한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촬영 장소가 알래스카였다. 외진 곳이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주인공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백야 같은 알래스카의 특수성을
알아야 했는데, 그 과정이 나는 오히려 좋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또 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작업한 소감은?
"놀란 감독은 천재적인 사람이다. 함께 작업하기 쉬운 사람은 아니지만
관객을 재미있게 할 줄 아는 사람이다. 로빈은 아주 똑똑한 신사다. 그는
대화하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괜찮은 배우다."
―당신이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시나리오가 재미있고 탄탄하다면 고려의 대상이다. 작품의 장르는
크게 가리지 않는다. '인썸니아'를 택한 것은 '메멘토'를 보고
존경하게 된 놀란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그리고 선과 악과 양심을
동시에 갖고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뭔가 내가 연기할 만한 것이
있겠다'고 싶었다."
―당신은 흔히 '세계 최고의 배우'로 소개될 만큼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그런 당신에게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연기가 있었다면?
"83년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스카페이스'를 찍을 때다.
연기하기는 힘들었지만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정받은 작품이라 애정이
많이 간다. '대부' 시리즈와 '스카페이스'는 지금도 출연작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들이다."
―많은 팬들이 당신을 '대부'에서 보여준 냉정한 마피아의 이미지를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신 스스로는 어떤 역할이 당신에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모르겠다. 로맨틱 무비의 주인공? 하하.”
돈을 벌기 위해 17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했을 정도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알 파치노는 68년 연극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이후 '대부2'
'개같은 날의 오후' 등으로 무려 8번이나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랐고,
92년 '여인의 향기'의 앞 못보는 퇴역 군인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에게 끝으로 "데뷔 초기와 지금을 비교해,
연기에 대한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동안 참 많은 작품을 했다. 데뷔 땐 오늘날의 나의 모습은 상상도
못했다. 이제 집에서 TV나 보며 지내도 되겠지만,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 이젠 여유롭게 도전을 즐기는 쪽이랄까.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꿈이 있다면 언젠가 영화 제작자로서도 성공해봤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