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국제도시' 홍콩은 간판의 천국이다. 도심 길거리가 간판으로
뒤덮이는 것은 물론, 4~6차선 도로 중앙까지 대형간판이 얼굴을 디밀어
운전자의 눈을 붙잡는다. 홍콩의 역동성은 밤낮 할 것 없이 시민과
여행객의 눈을 잡으려는 '간판문화'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 도심 센트럴(中環), 1900년대 초 홍콩의 구(舊) 중심지
완짜이(灣仔), 일본 비즈니스문화의 중심지 코즈웨이 베이(銅羅彎),
중국대륙의 관문 주룽(九龍)반도 침사추이(尖沙咀)…. 이들 거리는 그
역사를 자랑하듯 간판 또한 많고 크다. 간판들이 뿜어내는 홍콩의 야경은
누가 뭐라 해도 홍콩의 밤 얼굴이 돼 버렸다.
하지만 홍콩의 간판 문화는 어지러움 속에서도 고도로 정제된 질서를
갖고 있다. 우선 홍콩의 간판은 보여주고 자기선전하는 자본주의 도시
미학(美學)의 선도자이지, 시민들을 어지럽게 하고 불편을 주는
천덕꾸러기가 아니다.
길거리 간판(길 위에 세워 놓는 입간판)을 허용하지 않는 간판문화도
이래서 나왔다. 중국계 홍보대행사 다이애나 폭 홍콩 지사장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간판에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도 시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지 않고, 눈요깃거리로서 역할하는 긍정적 요소
때문"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디자인에, 구태의연한 간판은 홍콩에서 사절이다. 홍콩의
간판들이 시간이 갈수록 대형화하고, 도로 중심부까지 머리를 쭈뼛 내밀
수 있는 것도 다양한 간판 설치 아이디어 때문이다.
톡톡 튀는 간판은 움직이는 간판으로까지 발전했다. 홍콩의 2층
버스회사들은 버스 간판을 고객유치의 중요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노란
바탕의 얼굴에 다양한 얼굴을 그리는 시티버스(城巴), 백색·주황색으로
1·2층을 다르게 그린 퍼스트버스(新巴), 푸른색 바탕에 영화홍보에
앞장서는 KMG….
여기에 '땡땡'거리며 도심 철로를 지난다고 해서 '땡땡이'라는
별명이 붙은 홍콩 '도심 전차'도 움직이는 간판으로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청량음료 쿨(COOL), 펩시콜라, 중국 메이더(美的)사
에어컨, 영화 미래보고(未來報告·Minority Report)의 톰 크루즈, 중국
TCL휴대폰 광고의 김희선, 해왕성(海王星)호의 크루즈 광고 등 앞선
도시문화를 이들 움직이는 간판을 통해 늘상 만날 수 있다.
도심뿐만 아니다. 간판의 질서는 주택가에서도 유감없이 지켜진다.
정해진 위치가 아니면 간판을 설치할 수 없고, 엉뚱하게 벽보라도 한 장
붙이면 600홍콩달러(약 10만원)의 벌금을 물리는 강한 규제 때문인지
주택가의 간판 역시 주민들을 편안하게 한다.
홍콩을 찾은 한국인들이 주택가의 편안함과 세련됨에 놀라는 것도 홍콩의
독특한 간판문화 때문이다. 아파트 상가 외벽의 다양한 컬러, 독특한
디자인의 간판들을 보면 아파트촌(村)이라기보다는 서울 강남 로데오
거리를 연상케 한다. 홍콩 포스코(POSCO) 변상칠 과장은 "아파트
곳곳에서 세련되고, 톡톡 튀는 간판들을 보노라면 자라는 세대들의
감각을 키워줄 좋은 교육소재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평가했다.
(홍콩=李光會특파원 santaf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