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들을 개그맨처럼 연기시킨 ‘긴급조치 19호 ’.

서세원 프러덕션이 만든 코미디 영화 '긴급조치 19호'(19일 개봉)에선
감독인 김태균씨의 상상력보다는 제작자인 개그맨 서세원씨의 체취가 더
물씬하다. 영화는 서세원쇼의 흥행 전략을 상기시킨다. 그게 뭔가?
'일단 낯익은 가수 탤런트 개그맨들을 등장시킨다. 그리곤 황당무계하든
앞뒤가 안맞든 웃길수만 있다면 어떤 농담과 신변잡사도 불사한다.'쯤
아닐까.

독재 권력의 '가요 탄압'에 맞서는 가수들과 팬들의 저항이라는 꽤
'거창한' 껍데기를 갖고 있는 척하는 '긴급조치 19호'역시 본질에선
서세원 쇼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 미국-일본에서 잇따라 가수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위기 의식을 느낀 한국 독재정권이 긴급조치를 발동해 가수들을
잡아들이고 분노한 팬클럽들이 '항쟁'에 나선다는 설정부터가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다. 코미디적 과장이란 걸 몰라서 하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가수들을 툭하면 '저질' '대마초'로 몰아 두드려
잡는' 당국에 대한 '항변'을 담으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가는 대신, 시도 때도 없이 곁길로 새면서
깜짝 출연한 수십명 인기가수들의 '웃기기 경연대회'를 펼친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청와대'란 술집의 실장으로 착각한 김장훈이
좌충우돌하고, 무술배우 뺨치는 강타가 액션연기를 한다. "S.E.S 바다,
평소 성격 더러운 것 알고 있어. 걔 바다에 빠져 죽었어"라는 특정인
비하 대사가 튀어나오고 실제로 대마초 범죄를 저지른 싸이가 연행대열에
있다가 "난 대마초 땜에 왔어요"라고 고개들고 이야기할 정도로 상식도
염치도 팽개친다. 영화 내내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김장훈과 작곡가
주영훈등 숱한 스타들이 '×팔' '×만한' ×나게'등 육두문자를
입에 달고 스스로를 희화화 함으로서 그나마 가수들을 동정하려 했던
관객들마저도 고개를 돌리게 만든 건 이 영화 최대의 패착이다.

저질
농담과 야비한 야유로 가득한 이 영화 첫머리에 가당찮게 삽입된
광주민중항쟁 자료화면이 불경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필름으로 옮겨놓은
TV연예인 쇼같은 '긴급조치 19호'는 한마디로 입장료와 시간을 일부러
내서 보기엔 망설여지는 영화다. 톱 가수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릴 열혈 오빠부대들이라면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