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이 정말 장합니다. 정말….”

한국의 첫 월드컵 출전이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대회에서 헝가리에 0대9로 패할 때 한국팀 골키퍼였던 홍덕영(76·서울 옥수동)씨는 감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홍씨는 4일 밤 한국이 폴란드를 누르고 ‘본선 1승’이라는 48년 염원을 푸는 장면을 TV로 지켜보았다. 홍씨는 “미국전과 포르투갈전까지는 살아야 할텐데…”라면서도 “후배들을 보면 어깨가 으쓱할 만큼 자랑스럽고 괜히 눈물이 난다”고 했다.

그러나 54년 당시 이야기가 나오자 홍씨는 마치 눈앞에 운동장을 보는 듯 생기를 띠었다. 홍씨는 “지금과 그때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라며 “축구 실력도, 나라의 위상도 비참했었다”고 말했다. “당시 감독은 고 김용식 선생, 우리 팀 센터포워드는 ‘아시아의 황금발’ 최정민씨였어요. 그런데 경기 시작 전 김 감독이 최씨에게 ‘공격할 생각일랑 말고 수비나 열심히 하라’고 하더군요.” 결과는 헝가리에 9대0, 터키에 7대0 참패였다.

홍씨는 당대 세계 최고의 공격수 푸스카스(헝가리)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25~30야드 전방에서 날리는 왼발슛을 받으면 가슴에 뭉클한 통증이 전달됐습니다. 정신없이 골을 먹느라, 작은 몸집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던 왼발잡이가 푸스카스라는 사실을 경기가 끝난 뒤에야 알았어요.”

홍씨는 한 달 전 자신을 찾아온 일본의 한 신문 기자에게 “한국 사람들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꼭 해야 될 일은 한 번은 해내고 마는 힘이 있고, 그때가 바로 지금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함남 함흥에서 태어난 홍씨는 45년 월남한 뒤 보성전문에 편입해 축구를 시작했으며 47년부터 8년간 국가대표 골키퍼를 지냈다. 스위스월드컵 이후 은퇴한 뒤 10년간 국제심판을 맡았다. 경기 시작 전 직접 망치를 들고 축구화를 손질하던 1948년 당시 그의 사진이 월드컵조직위(KOWOC) 해외홍보관에 전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