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혼례식 재연 장면.책은 일부일처제가 남성 중심 결혼 제도 유지를 위한 방편이었다고 지적한다.


●일부일처제의 신화

데이비드 P 버래쉬 등 지음/ 이한음 옮김/ 해냄/ 1만2000원

일부일처제는 사실이 아니라 신화에 불과하다!

단도직입적인 제목이 드러내듯 이 책은 인간에게 일부일처제는 너무도
불안한 제도이며 다수의 성적 파트너를 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한다.

이 기본전제로만 보자면 이 책의 주장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다.
일부일처제가 부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위선적이라는 것은 아직 이 제도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충분히 낌새를 챌 정도로 '알려진
비밀'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광고 카피가
그렇게 호소력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며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외치는
영화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의 자연조건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필요에 의해 고안된
것이라는 주장은 학문적으로도 많이 제기돼왔다. 엥겔스는 사유재산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여성학자들은 남성지배와 여성예속이라는 측면에서
일부일처제와 이에 기반한 가족을 분석했다. 또 에두아르트 푹스는
일부일처제의 쌍생아로서의 간통과 매매춘의 역사를 방대한 풍속사
연구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보였다.

부부이기도 한 이 책의 두 저자는 사회생물학이란 렌즈를 통해
일부일처제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렌즈를 통해 비춰진 일부일처제는
생물학 자체의 명령에 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진화적 성향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들은 곤충에서부터 조류 파충류, 포유류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들을 대상으로 한 최신연구 결과를 풍부하게
제시하며 '성적인' 일부일처제가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가를
설파한다.

이 책은 다양한 동물들의 암컷과 수컷의 혼외성교를 따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는데 바로 이 부분에 책의 새로움과 미덕이 있다.
동물세계에서도 수컷은 성적으로 방탕하고 암컷은 수동적이라는
'남성생물학자의 관점'을 벗어나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새로운
연구사례를 제시하며 사실은 암컷도 얼마나 바람기가 넘치는지, 그리고
성생활에 적극적이며 주체적이고 전략적인 사고를 하는지를 주저없이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생물학자들 사이에 점점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일처일부형', '일처다부형'이라는 '암컷중심적 관점'의
새로운 용어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거리낌없는 도발이 느껴지기도 한다.

일부일처제를 남성들 사이의 평등의 결과로 소개하는 부분도 특별히
언급할 만하다. 저자들은 일부다처제는 여성을 억압하는 것이고
일부일처제는 이에 비해 여성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라는 상식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부다처제는 그로 인해 짝을 갖지 못하는 남성들에게 오히려
더 재앙인 것이며 그런 점에서 일부일처제는 남성들을 위한 거대한
번식평등화 도구라는 것이다. 여성이 배제된 형제애적 평등에 바탕한
근대사회를 '성적 계약론'으로 설명한 캐롤 페이트만의 논의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다.

기존의 남성중심적 시각을 넘어 서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면 인간의
행동도 모두 번식의 관점으로 축소시키는 지나친 생물학적 환원주의가
가끔 눈에 걸린다. 강간을 패배자의 번식전술로 본다면 우리 사회에
구조화된 여남간의 권력관계는 사라지고 만다. 사회생물학이 내포하고
있는 정치적 위험성을 생각하며 읽을 일이다.

(김신명숙·이프 편집위원·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