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인쇄에 비단 표지 등 전통 방식으로 ‘옛 책으로 엮은 한국의 옛 소설 ’을 펴냈다.‘문학벤처 ’를 자임하는 이상신 한성우 정영훈 정현우 차재경 이지연 김승구씨.(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a href=mailto:dhlee@chosun.com>/이덕훈기자 <

"월드컵이 다음 달이고, 아시안 게임도 10월인데, 인삼과 도자기, 하회
탈만 문화 상품이라고 내놓을 수는 없잖아요. 전통적 제책(製冊)
방법으로 만든 고전 소설은 우리 정신문화의 핵심입니다."

벤처기업이 한지에 비단으로 제본한 고전 소설을 내놨다.
㈜이텍스트코리아(www.textkorea.com)가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3개를 '옛 책으로 엮은 한국의 옛 소설'로 묶어 내 놓은
것. 김석봉(33) 연구기획팀장은 "한국의 정신과 물질을 한데 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울대 국문과 88학번.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지난
2000년 4월 창업멤버로 뛰어들었다. 이 회사는 서울대 국문과 전현직
교수들과 대학원 동문들이 힘을 모은 '문학 벤처기업'. "김윤식,
오세영, 권영민, 권두환, 최명옥 등 국문과 전현직 교수들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으며, 연구 운영에도 동문 선후배 6명이 함께 한다"는
설명이다. 그동안 '문장 학습기 개발' 등에 주력했는데, 이번에 처음
고전 문학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옛 소설책' 복원에는 1년 넘는 시간이 들었다. 대중들에게 널리
유통되던 방각본(坊刻本)을 저본하자는 데는 금새 뜻을 모았지만, 독회에
1년이 꼬박 필요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라면 이미지 때문에 사겠지만,
한국 사람들이 실제로 읽을 수도 있는 책으로 만들어야 했거든요.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아름다운 현대어로 풀어내는 데 투자한 겁니다."

제본은 아시아의 책을 연상할 때 흔히 떠올히는 장정(裝幀) 형식인
'선장'(線裝) 방식으로 했다. "선장은 고스란히 사람 손이 필요한
작업이죠. 한지는 양면 인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면에 인쇄를 한 후
중앙선을 따라 글자가 보이도록 절반으로 접고, 책의 등 부분을 끈으로
묶는 겁니다." 반 접는 일은 직원 12명이 밤새워 했다. 세 편 합쳐
500쪽에 달하는 분량이고, 초판으로 100세트를 만들었으니 최소한
5만장을 손으로 접은 셈이다. 배동준 경영기획팀장은 "손가락에 지문이
없어졌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접은 본문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후 다섯 개의 구멍을 뚫어 실로
고정하고 비단으로 표지를 쌌다. 습기와 뒤틀림으로부터 책을 보호하기
위해 '표곽'이라고 부르는 겉 포장이 하나 더 필요했다. 이 모든
과정의 고증과 감독은 제책 부문 전통공예 기능보유자 김권영 씨가
맡았다.

3권 한 세트는 22만5000원. 내용을 영어, 중국어, 일어, 한국어 등 4개
국어로 설명한 해설과 해당 작품들 판소리 공연, 책 제작 과정을 담은
동영상 CD를 부록으로 넣었다. 김 씨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다 보니
다소 부담스런 가격이 됐다"며 "반응이 좋으면 '장화홍련전'이나
'홍길동전' 같은 다른 옛 책도 이렇게 새로 펴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