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넘기고도 정정한 부모를 모시고 있는 나는 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이는 어쩔 수 없었던지 지난 해 어머니가 백내장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후유증으로 눈의 초점이 흐려져 글을 읽을 수 없게
됐다. 평소에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분이 신문조차 제대로 볼 수 없으니
매우 답답했던 모양이다. '오디오 북'을 몇 권 사다 드려 보기도
했지만 당신이 직접 읽는데 익숙했던 분이라 영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수술을 다시 하고 시력은 회복됐다. 눈이 밝아진 게 무척 좋았던지
"얘야, 내가 '600만불의 사나이'는 못 돼도 '600만원의 할머니'는
되겠다" 하고 웃는다. 예전에 이미 틀니를 해 넣었고 골절 때문에 강철
심을 박았고, 또 이번에 백내장 수술까지 했으니 가히 일종의 사이보그가
아니겠느냐는 농담이었다. 듣고 보니 과연 어머니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이미 사이보그인 셈이었다.
기계에서 분리된 생활을 상상할 수 없는 현대인은 모두 간접적 의미의
사이보그들이다. 사실 인간의 기계 의존도는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자동차와 전화, TV가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는가. 최근 휴대전화와
컴퓨터가 생활 깊숙이 파고들며 의존성은 더 심화되고 있다.
며칠 전 외신은 영국 레딩 대학 인공 두뇌학과의 케빈 워릭 교수가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했다고 전했다. 인체와 컴퓨터가 하나가 된 진짜
사이보그의 출현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이러다가 생존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칩을 이식 받으려 아우성치는 날도 오는 건 아닌지. 왠지 불안하다.
( 유재원/ 한국 외국어대 언어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