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란 유혹이다. 불혹(不惑)의 나이가 되면 그 유혹은 강해진다.
도시로부터의 탈출은 도시인의 갈구다.
우리의 유혹과 갈구가 섞여 만들어낸 이 시대의 공간, 라이브 카페촌.
허허로운 쳇바퀴 일상을 벗어나서 잠시나마 그 때 그 기억, 그 순간 그
느낌을 다시 한번 맛보려 떠나보는, 추억과 탈출의 별장 동네다.
여기에선 시간이 쌓이고 또 시간의 개념을 잃는다.
◆ 미사리 풍경, 신기한 풍경
이름도 아름다운 미사리(渼沙里). 물론 조금 더 액셀을 밟아 팔당대교를
넘으면 더욱 한적한 양평, 양수리, 청평이 펼쳐지지만, 그렇게까지 안
나가도 이미 전원이다. 도시도 아니고 시골도 아닌 '전원'.
참 신기한 풍경이다. 80Km 속도로 달리는데 갑자기 길옆을 따라 카페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도 아니고 국도를 따라 펼쳐지는
마을도 아니다. 5km 일직선의 도로를 따라 하나같이 색다른 건물이
나타나는데, 처음 가보는 사람이라면 낯익은 가수 이름과 노래 이름을
읽느라 속도를 줄이게 될지도 모른다. 낮에도 신기하지만 밤에는 더
신기하다.
'카페촌'이라고 부르지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따라 일직선으로 늘어선 '카페 스트리트'(망월동) 그리고 강변의 옛
마을에 들어서면 구불구불 길에 따라 오순도순 모여있는 '카페
빌리지'.(미사동)
분위기는 다르다. '카페 스트리트'가 마치 환영 인파가 도열해서 깃발을
나부끼는 듯 하다면, '카페 빌리지'는 마치 색동 보자기 속에서 뭐가
나올까 싶은 느낌. 스트리트는 한강을 조망하고 빌리지는 한강으로
다가간다.
◆ '생음악'에서 '라이브'로, '가든'에서 '카페'로
마치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 같지만, 라이브 카페촌이 된 것은 불과
지난 5~6년 사이다. 88올림픽 때 조성된 미사리 조정경기장을 따라
'마이카' 세대의 입맛을 잡기 위해 생겼던 고깃집, 횟집의 '가든' 열풍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후에 '카페' 바람이 불어왔다.
누가 어쩌다 '라이브 카페' 아이디어를 냈을까. '영원한 DJ 이종환'(카페
"이종환의 셸부르")이 시작해서 '영원한 오빠 송창식'(카페 "록시"의
고정출연)이 끌어주었다고 할까? '생음악' 세대, 1970년대 포크 문화의
기수들이다. 통기타 달랑 메면 언제 어디서나 노래할 수 있는
음유시인들, 라이브가 안되면 가수로 치지 않는, 말 그대로 '카수'들.
70년대의 '생음악'이 '생맥주'와 어울렸다면, 이제는 '라이브'가 '세트
메뉴'와 어울릴 뿐이다.
누가 '한물 간 가수'들의 동네라 하는가. 기억이란 사람됨이고 추억이란
사람살이의 맛인데. 누구나 한물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한물
가도 한 우물을 즐길 줄 안다면 그게 멋이다. 전인권, 윤시내, 민해경 등
80년대 가수, 그리고 박상민, 조정현 등 90년대 가수들도 가세해서 또
다른 추억세대를 끌어왔다. 물론 '카수'를 흠모하는 신인 가수들의
등단도 이루어진다.
누가 아는가. 지금의 21세기 가수가 10년 20년 후면 이 동네에
나타날지? '라이브'를 할 능력만 있다면 영광일 것이다.
◆ 추억으로 시간이 쌓이는 동네
미사리 카페촌에는 우리가 가고 싶어하는 동네들이 나타난다. "셸부르,
화가 마티스가 사랑한 마을 생폴, 하바나, 에콜드파리' 등. 우리가
바라는 감정도 나타난다. "열애, 준비된 만남을 위하여, 시간을 잃어버린
마을…" 등.
비록 카페 이름을 통해서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떠나고 싶어하고 얼마나
'낭만에 대하여' 갈구하는가. 컨트리풍은 압도적이다. 미국의 전원,
호주의 전원, 유럽의 전원, 한국의 전원. 낭만은 컨트리에서만 가능한가?
주목할 것. 미사리 카페촌에 러브호텔은 전혀 없다. 이야말로
낭만적이다. 낭만이란 몸이 아니라 마음인 것이다. 낭만이란 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밤을 지새는 것이다. 그것도 '라이브'로.
하남시는 올해 '카페 스트리트'를 따라 거리를 만드는 공사를 시작한다.
현재 4차선을 6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를 하는 김에 카페거리를 만든다.
이렇게 되면 카페에서 카페로 걸어다닐 수도 있다. 19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의 시간을 걷는 거리가 될까.
◆ 추억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미사리 카페촌은 유토피아는 아니지만 디스토피아도 아닌 우리의 삶이다.
'과거를 기꺼이 추억하려는 새로운 어른 세대'의 등장을 나타낸다.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즐겁게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것, 유행 따라
지나가는 새로움을 다시 찾는 새로움으로 만들 수 있는 힘, 그것이 이
시대의 새로운 전통이다. 추억하므로 우리는 존재하는 것이다. 노래하는
마을, 미사리. 영원히 노래하라!
( 김진애·건축가·㈜서울포럼 대표 jinaikim@seoulforum.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