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설, 이럴 땐 어떻게 하죠?”
서울대 전기공학과 설승기(45) 교수는 매주 한두 번씩 미국 GM의
현지 연구원들과 국제전화 회의를 갖는다. GM의 미래상품을 연구하는
'선행기술 연구소' 소속인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설
교수에게 '센서 없는 모터'에 관한 기술을 배우고 있다. 센서 없이도
속도와 부하에 따라 모터의 동력을 자동조절하는 장치로, 미래자동차인
전기 자동차의 핵심기술이다.
설 교수의 기술 전수는 2000년 10월 이탈리아에서 열린 한 국제학회에서
설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계기가 됐다. 논문을 본 GM은 이듬해 1월
간부급 엔지니어를 서울대로 급파해 연구 내용에 대한 실사(실사)를
벌였다. 그 결과 '6개월마다 연구비 7만달러를 지급하고, 연구장비와
부품도 GM이 댄다'는 조건으로 연구를 의뢰했다. 지난해 9월에는 현지
연구원 2명이 방한해 현장 연수를 받기도 했다.
당시 방한했던 GM의 10년차 연구원 스티븐 슐츠(Steven Schulz·36)씨는
"위스콘신대학 등 미국 내 유수 대학들과 함께 연구해봤지만, 기술이나
대학원생의 질 모두 설 교수팀이 월등했다"고 말했다.
전류변환기(inverter)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일본
야스카와전기도 98년부터 설 교수로부터 모터기술을 배우고
있다. 이 기술을 응용해 바람과 심한 진동 등 악조건에서도 원활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첨단 컨테이너 크레인을 개발 중이다.
세계 초일류 기업에 기술을 가르치고 있지만 설 교수는 정작
유학이라고는 가본 적이 없는 토종학자다. 1976년 중앙고를 졸업,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한 뒤 학사와 석·박사를 모두 서울대에서 마쳤다.
92년 모교 강단에 섰고, 98년엔 센서 없는 모터 기술로 미국특허를
획득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기전자학회(IEEE)지에 그동안
54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새해 벽두부터 설 교수팀에 경사가 겹쳤다. GM측이 계약기간 1년, 연구비
14만1000달러에 다시 과제를 맡겨왔고, 『MIT 등 미 명문대 출신과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며 박사과정 2명을 파견해달라는 요청도
보내왔다.
설 교수는 "연구 정보가 공개돼 있는 지금, 국내외 어디서 연구를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우리도 세계 수준의 기술을 지닐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생산기술연구원 성정현 박사는 "우리에게 설
교수 같은 학자가 있다는 것은 큰 자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