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행인들이 오가는 도심 한복판 길가에서 주위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매우 친밀한 ’포즈로 앉아있는 20대 연인들의 모습.이 정도는 요즘 서울에서 그리 대단한 풍경도 아니다.

## 키스를 중대한 접촉으로 생각안해…쉽게 이별도 ##

▲키스까지는 거침없는 ‘키스까지 세대’

20대들 '일번지'인 강남 삼성동 코엑스몰. 지난달 영화를 보러 이곳을
찾았던 회사원 김모(39)씨는 메가박스 영화관으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다가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실제 상황'을 목격했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던 스무살 또래 남녀 커플이 에스컬레이터 계단 위에 서서 꼭
끌어안고 진한 '프렌치 키스'를 한참이나 하고 있었다. 김씨는 "계속
보고 있어야 할지, 시선을 돌려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내가 우스울
정도로 그 커플은 당당했으며 주변 젊은이들 역시 '우리도 언제든
똑같은 상황이 되면 똑같이 행동할수 있다'는듯 담담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공공 장소의 과감한 애정표현은 종종 '풍기
문란' 경범죄로 처벌받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서울에서 이런 식 단속을
했다가는 '장발에 가위를 들이댔던'것 만큼이나 시대착오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될 만큼 스무살 젊은이들의 애정표현은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다. 모대학 C모(46)교수는 "키스 정도의 애정표현을 예전만큼
'중대한' 접촉으로 여기지 않게 됐다고 보는 게 맞다"고 했다.
"사귀던 이성과의 첫 키스 때부터 둘의 관계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여기던 구세대를 '키스부터 세대'라 한다면, 요즘 스무살
또래들은 키스까지는 '그 때 분위기 좋고 기분 통하면' 할 수 있는
'키스까지 세대'인 셈"이라 했다.

결혼정보회사인 ㈜듀오가 지난해 네티즌 585명을 상대로 벌인 조사에서는
미혼남녀의 85%가 "첫 키스 상대와 헤어졌다"고 답했다. 키스에 관해
집중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사이트(http://www.nkiss.net)의 게시판엔
"전 늙다리 고교 2년생인데 이제서야 겨우 첫 키스를 했습니다"라는
글도 올라와 있다. 대학생 구도현(26)씨는 "후배들이 문란해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눈치 안보고 자신에게 솔직하겠다는
태도 아니냐"고 했다.

▲빠르게 달아올라 쉽게 식으면, 또 새로운 상대를 만나기도

유학생 출신인 여대생 이모양은 작년 봄 교내 동아리의 환영회에서
호감가는 남학생에게 공개 구애해 사귀고 있다. 이 여학생은
"사랑한다면 섹스도 자유롭게 할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개방적인
사랑의 풍조는 조기 유학생이 늘면서 젊은이들이 서구적 삶의 방식을
현장에서 체험하게 된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92년 한 명문대생
700여명을 상대로 벌인 조사에선 성경험 있는 남학생의 46.4%가
'윤락여성'과 관계를 가졌다고 응답했으나 불과 5년뒤 똑같은 방법으로
벌인 조사에서 남학생의 성관계 상대 중 '애인'이 70.4%로 1위를
차지한 것은 애정 풍속도의 급변을 끊어 보여주는 단면도다.

빠르게 달아오른 커플은 쉽게 헤어지기도 하고 다른 상대를 금방 찾기도
한다. 대학 2년 남학생 문모(21)군은 현재까지 모두 5명의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 평균 연애 기간은 100일 안팎. 그가 스스로 밝히는 헤어진
이유는 ▲싫증이 나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돼서 ▲서로 부담이 되어서
등 갖가지다.

대학 4년생 배모(23)양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 어느 동아리의 한
남학생은 같은 동아리내 여학생과 사귀다 헤어진뒤 그 여학생과 그냥
친구로 지내면서, 이 동아리 내의 다른 여학생과 보란 듯 새로 연애하고
있다. 내가 1학년일 때만해도 그런 일을 보기 힘들었는데…"

이모양은 같은과 서모군과 사귀다 6개월만에 헤어졌다. 평소
돼지저금통에 일정액을 저축해놓고 데이트 비용으로 써오던 둘은 남은
돈으로 함께 영화보고 식사한 뒤 선물 사서 나눠 갖고 헤어졌다.

대학생 손모씨는 "스무살 또래 중엔 사랑과 이별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의 머릿수가 이전보다 조금 더 많아진 것을 분명히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