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가 판치는 문화 현상의 반영일까, 아니면 불황기의 대중을
위안하려는 '유머전략'일까.
광고계에 '가짜 모델' '모방 모델'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얼른 봐서는
할리우드 배우 숀 코너리, 팝스타 마이클 잭슨, 영국 코미디언 미스터
빈이 분명해 보이는 세계적 스타들이 국내 CF에 불쑥불쑥 출연,
시청자들을 깜짝놀라게 하고 있다. 물론 스타를 빼닮은 가짜 모델들이다.
유명인과 꼭같은 이미지를 뒤집어쓴 채 등장한 이들은 그러나 결코
스스로를 진짜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흔히 '이미테이션 모델'로 불리는 이들을 미국 광고업계서는
임퍼스네이터(impersonator·분장자)라고 부른다. 지난 4월 신문·방송에
소개되기 시작한 삼성 컴퓨터 광고 '센스Q'는 임퍼스네이터 기용의
대표적 사례. 비행기를 탄 한국 여성이 노트북 컴퓨터를 사용하다 우연히
옆자리에 앉은 '007'의 주인공 숀 코너리를 발견한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구나." 그러나 조금만 자세히 보면 가짜다. 그는 숀
코너리가 아니라 존 알렌이란 미국인 모델이다. 이 광고는 2탄으로
이달초부터 마이클 잭슨 임퍼스네이터를 등장시키고 있다.
동아 오츠카의 홍차음료 '데자와'는 인기가수 박지윤을 마릴린 먼로와
똑같이 변장시켜 코믹한 연기를 보여줬다. 대우자동차 마티스는 영국의
유명 코미디언 미스터 빈과 꼭닮은 모델을 기용했고, 기아자동차 슈마는
영국의 고 다이애나 왕세자빈과 닮은꼴의 여성 모델을 썼다.
국내 유명스타의 임퍼스네이터도 등장했다. 고소영을 모델로 등장시켰던
'하이마트' 광고는 요즘 고소영과 꼭닮은 여성 모델이 등장하는 CF를
내보내고 있다. 가짜 고소영의 대사는 없고, 클로즈업되지도 않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진짜냐 가짜냐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최근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빼닮은
송양규씨(55)와 배은식씨(53)가 즉석 북어국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물론 광고 내용중 남북 정상이란 표현은 나오지 않는다. 해외에도
임퍼스네이터는 유행이어서, 일본 보스 캔커피 광고엔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을 쏙 빼닮은 모델이 등장하기도 했고, 이탈리아에선 신발
광고에 교황을 등장시켰다가 상업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모방 모델들은 어디서 구할까. 미국내에서는 이런 모델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에이전시가 상당수 있어, 패러디 마케팅을 원할 경우
이 회사들을 이용한다. 가짜 숀 코너리로 출연했던 존 알렌은 많은
영화에 숀 코네리 대역배우로 출연했고, 일본 도요다 자동차 광고에 숀
코네리 임퍼스네이터로 출연한 경험도 있다. 마이클 잭슨편 CF에 나오는
배우는 에드워드 모스로 미국내 '마이클 잭슨 닮은 인물 선발대회'에서
3위를 차지, 현재 라스베가스에서 '마이클 잭슨 쇼'를 하고 있는
연예인이다. 물론 모델료는 월등히 싸다. 숀 코너리를 직접 쓸 경우,
대략 3억~4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들 가짜 배우는 A급의 경우에도
출연로가 일당 800만~1000만원 수준이다.
이미테이션 모델의 등장에 대해 제일기획 박성혁 AE(광고기획자)는
"'패러디'라는 문화현상을 활용한 광고 효과 극대화 전략"이라며,
"15초란 짧은 광고시간에 어지간한 자극에 둔감한 신세대 소비자들을
움직이기 위해 잠시나마 혼돈을 주고 광고에 대한 강한 기억을 남기려고
이미테이션 모델을 기용하게 된다"고 했다.
홍성태 상명대 교수(경영학)는 "불황기일수록 유머러스한 광고가
소비자에게 먹힌다는 점과, 적은 투자로 깜짝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광고 제작자들이 임퍼스네이터를 선호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코믹한 패러디 문화에 익숙한 10대~20대
소비자의 문화 경향을 읽은 탓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