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들이 ‘도청’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기업들 간에 신기술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산업스파이 사건이 빈번해짐에 따라 도청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때문에 회의 내용 등까지도 도·감청될 수 있다고 보고 보안업체에 방지대책을 의뢰한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통신장비개발사업을 벌이는 A기업은 최근 사원들에게 민감하고 주요한 사안과 관련된 대화일 경우 회사 전화보다는 휴대전화를 이용하고 휴대전화도 가급적 자기 것보다 내근자나 제3자의 것을 사용하고 이메일이나 인터넷 접속을 통한 교신은 받아보는 즉시 삭제해버릴 것 등을 권장하고 있다. 또 보안업체에 의뢰해 건물 전체에 대한 도청장치 검색을 실시했는가 하면, 회의실 등에 도청방지 장치까지 설치했다.
보안업체 ‘007 월드’의 성준기 사장은 “워낙 정보통신기기의 발달로 도청기술이나 기자재도 007영화를 뺨칠 만큼 발달되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장담 못한다”고 말했다.
주파수를 아예 노이즈(잡음)처럼 잡히게 하는 ‘스프레드형’ 도청기, 외부에서 레이저 광선을 쏘아 유리창의 진동을 통해 음파를 읽어내는 레이저도청기, 실내에 놓여 있는 전화기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도청장치로 바꿔 주는 ‘인피니티’(infinity)형과 ‘슬레이브’(slave)형 도청기 등이 최근 서울 청계천 전자상가에 등장한 인기품목들이다.
도청은 특히 산업정보를 빼내려는 기업들 간에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보안업체 ‘스파이존’측은 작년 1분기 79건에 불과했던 ‘도청 검색’ 의뢰가 올 1분기에는 3배 가까운 184건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불법도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시내 3~4개 대형 보안업체들이 실시하는 도청 탐색만도 한 달 평균 200여건에 이른다.
국가기관의 감청도 여전하다. 보안업체 관계자들은 “기업체 의뢰를 받아 검색을 하다 도청기를 찾아내 제거하면, 정부 모 기관으로부터 ‘우리가 감청하던 것이다’는 연락을 받기도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사기관에서 실시한 감청의 숫자는 모두 2380건으로, 월평균 감청건수만 198건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B기업 간부는 “조지 오웰 소설의 ‘빅 브러더(Big Brother)’는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을 꿰뚫고 통제하는 공포의 대상”이라면서 “21세기 민주화된 사회에서 남이 나를 엿볼지 모른다는 우려 속에서 일상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