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는 즐거움
리처드 파인만 지음
승영조 등 옮김, 승산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교수는 20세기를 살아간 물리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중후하고 인자한
할아버지같은 아인슈타인에 비하면 그는 스스럼없이 소탈하고 버릇없는
미국인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천재 물리학자이다. 그는 노벨상을 수상한
연구업적도 있지만 어려운 과학을 명쾌하게 전달하는 과학의 전도사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어려운 전문서적인 '양자역학과 경로적분'으로부터,
이 책「발견하는 즐거움」(The Pleasure of Finding Things Out)처럼
일반인을 위한 자기 생각을 파인만 특유의 표현으로 엮은 책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서는 퍽 다양하다. 자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토대로 과학과 세상을 재미있게 그려내는 부분이 있고, 둘째로는 좀
기술적인 소재를 정말 재미있고 쉽게 소개하는 부분이 있다. 끝으로 그는
과학과 사회 그리고 종교 등을 소재로 한 딱딱한 이야기를 파인만식의
화법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파인만의 참 모습은 역시 자기 주변의 일들을 그만이 나타낼 수
있는 화법으로 풀어나간 부분이며, 이 책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몇
토막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파인만이란 사람의 영상이 떠오를 것이다.
어린 파인만은 생각하는 것이란 자기 자신과 속으로 대화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친구인 버니와, 자동차의 동력을 전달하는
크랭크샤프트를 생각할 때 괴상하게 굽은 샤프트의 영상을 떠올리는 것이
생각의 본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생각이란 자기 자신과의 대화뿐이
아니라 영상화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훗날 파인만이 노벨상을
받게 된 연구업적 역시 복잡한 수식에 의존하지 않고 '파인만
다이어그램'으로 알려진 그림(영상)을 이용하여 복잡한 생각을
단순화함으로써 이루어낸 업적이었다. 아마 이런 소양은 어린시절부터
싹트게 된 영상화의 소양 덕분이라 짐작된다. 특히 11장 마지막 부분에서
어려운 특수함수를 수록한 책의 수식이 색깔로 된 글자와 기호로
영상화되어 보인다는 대목은 정말로 파인만만이 가질 수 있는 능력이라
생각되며 끝없는 존경심과 선망을 자아내게 한다.

파인만은 평생을 본질적인 것을 찾아내는 데만 바친 사람이다. 새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 아는 것의 본질이 아님을 강조하는 부분은 파이만
답다. 예를 들어 참새는 영어로는 스패로우, 우리 말로는 참새,
일본말로는 스즈매인 것이어서 이름은 참새의 본질일 수 없다.
스패로우라 하든 참새라 하든 이름이 다르다고 다른 새가 아니다. 새의
크기와 부리의 모습, 그리고 습성 등이 참새의 본질이고 이를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파인만은 옛날 마야인들이 덧셈을
하는 데 여러 개 콩을 실제로 헤아려서 보태는 것이나 적분으로 알려진
수학기법이나, 보태어 나가는 기법이란 면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는 이렇게 지식의 밑바닥에 있는 본질을 찾아내고 그것을 이해하는
천부의 소질을 가진 그런 사람이기도 한 것이다. 본질만을 추구하는 그의
태도는 과학의 본질이 아닌 총장직 같은 감투나 노벨상 마저 과학의
본질이 아니기에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 책의 내용 중 기술적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파인만 교수는
1980년에 벌써 요즘 유행하는 나노과학으로 알려진 미세구조 과학을
예견하고 64분의 1인치 크기의 동력장치를 처음 만드는 사람에게
현상금까지 걸기도 했다. 그는 또한 원리적으로 만들 수 있는 최소
크기의 컴퓨터를 깊은 물리법칙의 원리로부터 추측하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위 말하는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짚어보고 필요한 알고리즘도
문외한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현재
컴퓨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계산이 빠르며 암호해독에도 월등한
기능을 발휘한다. 필자가 아는 한 이 획기적인 컴퓨터의 가능성은 파인만
교수가 제일 먼저 제안한 것이다. 그의 이런 발상은 파인만의 중요한
연구업적 가운데 하나인 '양자역학의 경로적분' 표현과 무관하지 않다.
언젠가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면 지금의 수퍼컴퓨터는 주판에 불과한
날이 올 것이다.

파인만 교수는 이렇게 미래의 과학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우주선 챌린저호가 폭발하여
여섯 명의 우주인과 한 명의 여교사가 숨진 사건이 있었다. 그 원인은
추운 날씨를 무릅쓰고 무리하게 발사한 챌린저호의 간단한 부품인 고무
개스킷이 추위를 못이겨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밝힌 이도 파인만
교수였다.

과학과 종교 및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파인만은 특유의 간결한 태도를
특유의 솔직한 표현으로 설득하고 있다. 과학자는 언제나 사실을
존중하여야 하며 인기나 돈을 위해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직선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종교에 대해서도 과학의 입장을 명쾌히
표현한다. 천동설과 지동설에 얽힌 종교의 입장을 조명하면서 그는
종교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없는 종교는 눈먼 장님 같다고
설파한다. 삶과 종교를 넘나들면서 모든 일을 알아내는 기쁨을
파인만답게 표현한 이 책을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다.

◇파인만 약력

1918년 5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출생.
1939년 MIT공대 졸업.
1941~45년 미국 원자폭탄 계획에 참여.
1942년 프린스턴대 박사학위 취득.
1945~50년 코넬대 교수(이론물리학).
1950~59년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
1954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상 수상.
1961년 '양자전기역학' 출간
1963년 '파인만 물리학 강의'(전3권) 출간
1965년 양자전기역학의 초기 공식화에 대한 부정확성을
수정한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 수상.
1988년 2월15일 LA에서 사망

( 김제완·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과학문화진흥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