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에서 일산 시가지로 들어서는 초입, 장항동 뒷골목. '에이스
특수효과' 사무실은 무슨 철물점이나 가전제품 수리상 같다. 사장
책상도 작업대나 다름없이 어지럽다. 옆 벽엔 자잘한 부속함 수십개가,
책상 아래엔 공구함이 쌓여있다. 접착제며 전선 나부랑이를 늘어놓고서
박광남(60) 사장은 부지런히 뭔가 만들고 있다. '전자
고무탄'이다.
폭약이 담긴 고무조각과 몇가닥 전선을 이어 놓아 전자제품 부속처럼
생긴 고무탄은 실탄 못잖은 시청각 효과를 낸다. 배터리를 내장한 모형
총에 장전해 방아쇠를 당기면 요란한 총성과 불꽃, 연기를 연발로
터뜨린다. 물론 총알이 나가지도 탄피를 남기지도 않는다. 근래
'쉬리'를 비롯한 몇몇 영화 제작팀이 할리우드에서 총과 공포탄을
빌려오기 전까지 한국 영화 전투신을 전적으로 지탱해온 그의
창작품이다.
그는 한국 폭약-총기 효과의 역사 그 자체다. 60년대 초 충무로에 들어선
이래 내내 한 우물을 팠다. '빨간 마후라' '돌아오지 않는 해병'에서
'남부군' '태백산맥'까지 영화 수백편과 '전우'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같은 TV 드라마의 폭파 총격신이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처음 충무로에 갔더니 조명팀에서 가욋일로 특수효과를 하더군요.
실총과 실탄, 살상용 군 폭약을 그대로 써서 위험하기 짝이 없었지요."
그는 특수효과를 전담하는 최초 영화인이 됐다. 공군 폭탄해체팀에게
폭발물 다루는 법을 배우고 책을 구해 보며 노하우를 쌓았다.
"어느 단계까지 이르니 그 다음엔 혼자 터득해야 하는 일이더군요."
한국적 현실에서 특수효과란 교범도 없는 미개척지였다. 그의 특수효과
인생은 시행착오의 반복이었다. 고무탄만 해도 20년 전 개발해 지금껏
고치고 다듬는다.
그의 독보적 역량은 영화, TV에 머물지 않는다. 뮤지컬 '명성황후'를
비롯한 무대극과 CF들이 그를 불렀다. 팀스피리트훈련 상륙작전에서
포탄이 터지는 모습도 훈련 첫 해부터 8년 내리 연출했다.
경부고속도로부터 고속전철, 새만금, 대전 엑스포, 최근 경의선
기공식까지, 한반도 역사의 첫 삽을 뜨는 발파 기공식도 그의
몫이다. 물속에서 터지는 함수폭약을 써서 오색 물기둥이 바다 위 200
까지 치솟게 한 97년 부산 신항만 기공식은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총과 공포탄을 빌려주지 않는 당국이 원망스럽다. 미국에는 총기
대여회사들이 성업하고 있고, 홍콩이나 러시아의 군경 당국은 외국
제작팀에도 총을 빌려준다고 한다. 한국에선 70년대 초까지 당시
치안국에서 빌려 쓰다 왕십리 무기창이 옮겨가면서 일절 끊겼다. 그밖엔
국방부 정훈-홍보영화를 제작할 때만 군 당국이 총을 대줬을 뿐. "쓸 모
없는 M1과 카빈이 창고에 몇만정 쌓여있는데 몇백자루만 빌려주면 얼마나
좋아요. 담당 경찰이 촬영장을 24시간 따라 다니며 총을 관리하는
러시아처럼 하면 별 문제 없을텐데."
그래서 권총과 M16은 장난감을 개조하고, M1 같은 옛날 총은 일일이
주물을 뜨고 나무를 깎아 만든다. 폭약은 마그네슘을 사들여 다양하게
압축해 쓴다. 고무탄도 그런 군색함의 산물인 셈이다. 그의 자급자족형
노하우가 해외에선 경이로움이다. '명성황후' 뉴욕-LA 공연때엔
총격신마다 기립 박수가 터졌다. 그곳 전문가들은 가짜 총으로 귀청을
때리는 발사 효과를 내고, 탄피가 구르지 않아 배우들 연기가 방해받지
않는 데 감탄했다.
그는 요즘엔 영화 작업이 뜸한 편이다. "감독들이 나이든 나보다 젊은
사람 부리기가 편해서 그런 모양"이라며 웃는다. 지금 활동하는
특수효과팀 다섯이 모두 그의 밑에서 배워 나간 사람들이라 한다.
한창때엔 하루 서너건씩 작업했으면서도 큰 사고 한번 나지않은 게 그는
"천우신조"라며 고마워 한다. 연기자가 가볍게 화상을 입는 사고가
몇차례 있었을 뿐이다. "효과팀과 스태프, 연기자가 서로 신뢰해야 실감
나는 화면이 나옵니다. 못 미더워서 몸 사리면 사고 나기 십상이지요."
그는 이렇게 좋은 직업이 어딨냐며, 여건 허락하는 데까지 계속할 거라고
했다. "제대로 폭발할 때마다 스트레스 풀리고, 세상 두루 다니며 툭
트인 야외에서 일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성공했을 때 기쁨이 최고라 한다.
그는 인터뷰를 끝내자 곧장 책상에 고개를 박고 고무탄을 만들었다.
"직원들 시켜도 되겠지만 스스로 뭔가 만들고 일한다는 게 즐겁다"는
그에게서 대가이자 성실한 장인의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