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은 요즘 한자어 발음 표기법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대륙에서 사용하는 '한어병음' 표기법(로마자 표기법)을
대만에서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대만에서는
천수이볜(진수편) 당선 이후 독자적 표기법인 '통용(통용)병음(대만식
로마자 표기)'을 채택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 교육부는 지난 7일 그동안 써오던 '주음부호(한자의 획을 따서
만든 표기법)' 대신 천수이볜이 제창한 '통용병음' 표기법을 대만의
공식 표기법으로 채용하고, 내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이를 근거로 교육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중국어를 사용하는 해외 화교학교에서도 이
'통용병음' 표기법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통용병음' 표기법이란 지난 98년 천수이볜이 타이베이(대북) 시장에
당선됐을 때 널리 제창한 표기법으로, 영어 알파벳으로 한자의 발음을
표기하는 점에서 대륙의 '한어병음'과 유사하지만, 몇가지 표기에서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흥'자의 경우 중국에서는
'싱(Xing)'이라고 표기하지만, 대만에서는 '싱(Sing)'으로 표기한다.
또 gi(대만에서는 ci), zh(jh), (yu) 등의 표기법이 서로 다르다. 천
총통은 타이베이 시장일 당시 시내의 모든 교통 표지판을 이 표기법으로
바꾸도록 명령했다.
대만이 13억 중국인이 쓰는 한어병음 대신 통용병음을 채택키로 한
배경에 대해, 대만 교육부차관은 "이것이 대륙의 한어병음과 큰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민남어(대만 및 복건성 지방의 방언)나 객가화 등
향토언어 표현이 쉬워 사람들의 사용습관에 부합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대륙의 한어병음 표기법이 지난 86년 유엔이 사용을
결정한 중국어 공식 표기법이며, 미국 등 외국에서 중국어 교육시 90%
이상의 학생이 선택하는 공통된 표기법이라며, 대만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일부 중국 인사들은 "대만 표기법의 본지화는 대만의 독립
움직임과 일맥상통한다"며, "표기법 문제는 단순히 언어문화상의
문제일 뿐 아니라, 대만 독립과 관계된 정치적 문제"라고 비난했다. 또
미국 버클리대학의 주바오용(주보옹) 교수는 "대만이 자체 표기법을
고집할 경우, 앞으로 대만 학생들이 곤란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만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마잉쥬(마영구) 타이베이
시장은 "중국어 표기법은 국제추세와 세계와의 소통문제를 고려해야
하며 정치적 요소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된다"면서, 천수이볜이 바꾼
도로 표지판을 다시 뜯어고치는 작업을 하고있다. 또 대만 교육부
내에서도 '표기법의 통용성과 보편성'을 들어 '통용병음' 표기법에
대한 반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만의 현지 지명을 '통용병음' 표기법에 따라 발음나는 대로 적을
경우, 대륙식 표기와 너무 차이가 난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예를 들어
타이베이 다룽(대용)가의 경우, 중국식 한어병음 표기법으로는
'Dalong'이 되지만, 대만식 통용병음에 따른 현지 표기법은
'Dairung'이 되어, 대만 사람조차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올 봄 천수이볜 총통 당선 이후, 양안은 정치·군사 문제뿐 아니라
언어 교육문제에서도 갈등의 골이 깊어가는 양상이다. 중국·대만 관계가
이러하다면, 그보다 교류 협력의 경험이 훨씬 적은 남북한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게다가 내부 의견 통일이 더딘 한국에서는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양안의 갈등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아 보인다.
(북경=지해범특파원 hbj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