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명이 필요 없는 일류 탤런트 김희선, 20년 동안 700여종 책을
만든 일류 출판사 김영사, 그리고 '사람을 찍는다기 보다 이미지를
찍는다'는 명성처럼 모든 연예인이 선호한다는 일류 사진작가
조세현. '일류' 대신 '한국 최고'란 표현을 써도 될 이들이
주연, 감독한 '스페셜 추리극 누드 사진집 파문'이 일주일 내내
연예계를 달궜다.

지난주 토요일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김희선 기자회견장은 신문사가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100여명의 기자들이 몰려 이 파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실감케 했다. "선생님(조세현 씨) 강요에 의해
찍었다"라며 눈물로 호소한 김희선. "누드에 대한 편견을 깨려는
시도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는 김영사 박은주 사장. "내가
거짓말한 걸로 판결나면 법원 앞에서 돌을 맞겠다"는 조세현 작가.
서로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지금으로선 도대체 누구 주장이
진실인 지 아리송할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흰 눈 뜨고 보려드는 '누드 사진집'이란 핵심만
떼놓고 보면, 이번 사태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요즘 대중문화 현장 곳곳에선 '기존 틀'을 거부하려는
움직임들이 많다. SBS 청춘 시트콤 '행진'은 시청자 서비스
차원에서 출연자들의 '고정 성격'을 바꾼 특집 한편을 만든단다.
쉽게 말해 '순풍산부인과' 오지명의 성격을 박영규로 바꾸고,
박영규 말투를 오지명식으로 한다는 것인데, 그 발상이 튄다.

감독 혼자 '북치고 장구치던' 영화판도 바뀌고 있다.
'어른들은 청어를 굽는다'를 만든 류숙현 감독은 새 영화
'불가사리언'에서 남자 주연만 정한 뒤 인터넷 네티즌 투표를
통해 여자 주연을 뽑기로 했다. 시나리오도 40여명의 젊은
작가들이 공동 각색한다. 가요에선 진짜 여자 한명과 디지털
그래픽 남자 캐릭터 두명으로 구성된 혼성 그룹이 준비되고 있다.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헷갈리게 만들 만한 기획이다. 코미디언
김형곤은 강남 한 복판에서 '게이쇼' 공연을 제작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여장 남자들이 휘트니 휴스턴 노래를 모창하는
등 점잖은(?) 수준이지만, 공공연하게 '게이쇼'를 기획한 것
자체가 파격이다.

스타의 누드도 외국의 경우 터부시 되지 않는다. 작품성과 의도에
문제가 있으면 논란이 되는 정도다. 이번 '김희선 누드 소동'도
어쩌면 '누드'에 대한 우리 사회의 터부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알려지기로는, 김희선 사진의 노출 수준은 별 게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정상적 여자라면 '누드' 소리만으로도 경직될 수
밖에 없다. '외설'과 '예술'에 대한 옥석 구분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도 '누드' 자체에 대한 알레르기적 소심증과
편견은 벗을 때가 된 게 아닐까 싶다. (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