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비에 토드의 ‘카뮈’
1996년 프랑스에서 출판된 올리비에 토드의「알베르 카뮈, 하나의
삶」이 마침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저자가 수십년 간의 기자
생활을 통해서 축적한 프랑스 문단과 지성계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카뮈에 대한 심심한 애정에서 출발하여 치밀한 자료 수집 끝에 집필한
카뮈 전기이다.
알베르 카뮈는 노벨상 작가이기 이전에 치열한 삶을 살았던 ‘평범하면서 동시에 유일한 ’한 인간이었다.사진작가 카르테에 브레송이 46년에 찍었던 카뮈의 모습.
카뮈 전문가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문서(편지,
사료 등)들이 카뮈의 삶과 문학에 대한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가진 문헌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는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 한 예로, 무명 작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갈리마르 사에서 출판되기까지 어떠한 뒷얘기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당시 문단의 실세들이던 장 폴랑, 앙드레 말로, 파스칼 피아, 장
그르니에, 레이몽 크노 등과 카뮈 사이에 오간 편지들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이방인」 연구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또한 지금까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카뮈의 여성 편력에
관해서도 소상하게 밝히고 있어서, 「시지프의 신화」에서 ‘부조리한
인간’의 한 전형으로 예찬한 동 주앙의 얼굴을 한 카뮈의 모습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특히 20세기 최고의 프랑스 연극배우로 꼽히는
마리아 카자레스와의 애증 어린 사랑 이야기나 카뮈-카자레스-카트린
셀레르스와의 삼각관계 등은 인간 카뮈의 진솔한 면을 드러내주고
있으며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간단히 말해서, 올리비에
토드는 대부분의 전기작가들이 그러하듯 인간 카뮈와 작가 카뮈를
동시에 조명하면서 인간과 작가 사이의 미묘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흔히 심리주의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며, 토드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1995년 연말이었다. 「르 몽드」지
문학부 차장인 친구 파트릭 케시시앙이 교정용으로 가제본된 책을
구해서 내게 건네주었다. 쏘르본느 대학에서 카뮈에 관한 박사논문을
준비중에 있던 나는 파리 북쪽에 위치한 샹티이의 한적한 숲속에서
4박 5일 동안 이 책에 몰입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허버트
로트만의 카뮈에게서와는 매우 다른 카뮈를 발견하는 흥분과 긴장으로
짜여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카뮈 연구자들에게는 물론 카뮈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는 필독서이고, 올 여름의 무더위를 독서로
식히려는 문학애호가들에게는 한 편의 흥미진진한 대하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마지막 장을 끝내고 책을 덮는 독자들의 흐뭇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은, 카뮈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20세기 프랑스
지성사의 흐름에 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인간과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카뮈가
노벨상 작가이기 이전에, 하나의 삶을 진하게 살았던 '평범하면서도
유일한'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많은 독자들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분적으로 좀더 정확한 번역이 아쉬운 점도 있긴 하지만, 방대한
분량의 원고를 매끄러운 우리말로 옮겨놓았다. (이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