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산 노수현의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전시회라면 지난해에 열렸어야
했다. 같은 해 태생인 변관식이 지난해에, 이상범이 1997년에 모두
때맞추어 열렸음에 비할 때, 노수현에 대한 배려는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지금이라도 열렸으니 다행이다.

노수현의 그림을 구태의연하다고 하는 평을 가끔 접한다. 물론 그의
그림에서 강한 보수성을 느낀다. 그러나 외견상의 보수성 뒤에 감춰져
있는 것은 뚜렷한 사실성과 이에 바탕한 전통 산수화에의 이상이다.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접한 천도교의 저항적인 태도에 따라 식민지에서의
고단한 현실을 은근히 고발하는 그림들은 엄혹했던 식민지에서 펴나갈
여지가 차단 당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품 있는 필치로 우리
국토를 예찬하고, 전통 미술의 좋은 측면을 계승하는 데 주력하였다.

중국화풍과 일본화풍이 혼재됐던 시기에 조선 산수화의 정신을 이어,
힘찬 골기의 필세와 유현한 공간감을 가진 작품을 통해 동양의 심미적
세계를 묘사했다. 한국적 산수화를 추구하면서 민족적이고 자주적인
주제의식을 갖추었다는 것도 그의 작품세계의 큰 특징이다.

식민당국이 주최하던 조선미술전람회(이른바 선전)에 참가하다가 단연
절연했던 노수현. 그가 새나라에 세워진 첫 대학교육기관에서 후진을
양성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래서 화가로뿐 아니라 서울대
미대의 초석을 다진 교육자로서도 평가받고 있다.

예술은 다른 활동과 마찬가지로 진실한 삶 속에서 바른 방향을 타고
생성되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노수현의 그림은 하나하나 다시
읽혀져야 한다. 예술에 대한 넓은 이해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회고전은 이런 활동이 가능한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외국서는 한 미술가가 평생에 걸쳐 정열을 쏟아 만든 자산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되돌아보면서 재평가할 좋은 기회가 풍성하다. 우리도 이제
미술역사가 깊어지고 있다. 이런 회고전의 기회가 더욱 늘어야 할 것
같다. (최석태·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