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를 뒤흔든 국사 교과서 개편 파문의 실무 주역이었던 윤종영 전
문교부 역사담당 편수관(현 서울 금천고 교장)이 31일 정년 퇴임을 앞두
고 당시의 개편 작업 전말과 뒷얘기 등을 엮은 회고록 '국사교과서 파동'
(혜안간)을 출간했다. 윤씨의 회고록은 때마침 시인 김지하씨가 상고사
바로세우기 운동에 뛰어듦으로써 단군조선 복원 열기가 고조된 시점에
발간됐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은다. 윤씨는 "12년 동안의 재임(1980∼
1992년)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단군조선을 둘러싼 재야사학자와 기존 학
계의 논쟁이었다"며 "이 때 제기됐던 문제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 여
기 깊이 관여했던 입장에서 전후 과정을 정확히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으
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회고록에선 재야사학계의 교과서 개편 국회청원 운동과 공청회(81년),
조선일보에 의한 고대사 개편 문제제기(86년)등이 계기가 된 국사교과서
개정작업 과정이 당시 자료들과 함께 상세히 전해진다. 단군조선의 실재
여부를 둘러싼 재야와 강단 사학자 간의 건널 수 없는 인식 벽, 이 나라
의 대표적 원로-중진 학자들이 출석한 가운데 이런 문제가 국회에서까지
다뤄져야 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 등이 절절히 느껴진다. 특히 86년
광복절 기념 조선일보 '국사교과서 다시 써야 한다' 시리즈로 인해 휴가
지에서 급거 상경했더니 당시 문교부 고위 관리가"오늘 중 국사편찬위원
장을 만나 당장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는 얘기에선 졸속 처방을 서
둔 분위기가 엿보인다. 고심 끝에'국사교육심의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일
부 교수들은 여론의 열기에 압력을 느껴 참여를 꺼리기도 했으며 어떤
원로는 사표를 내기도 했다는 사실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도 처
음 공개된다. 또 최종적으로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의 반영으로 파악하
고 고조선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형성이었다는 사실을 중시한다는등 35
개 조항의 개편안을 확정하자 기독교 측에서 "우리가 어떻게 곰의 자식
일 수 있는가"라며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 교과서 화형식을 하겠다고 공
언한 사실도 공개된다.

한 공직자가 재임 중의 쟁점에 대한 자료와 의견을 꼼꼼히 정리했다는
기록정신과 함께, 지금도 진행 중인 단군조선 논쟁에 대한 시사를 얻을
수 있는 저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