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은 이제 주류 가요의 단골 레퍼터리다. 10대를 노리는 댄스팀이
랩을하지 않으면 '왕따' 당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게 무슨 힙합이냐고
딴지거는 젊은이들이 있다. 주류 가요의 힙합은 껍데기 리듬만 따다가
댄스음악을 장식한 '모조품'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적어도 PC통신 흑인음
악동호회 중가장 큰 '검은 소리' 멤버들은 그렇게 말한다.
2년전 데모 음반을 만들어 관심을 끌었던 이들 멤버들이 정식 앨범
'검은소리'를 발표했다. 언더그라운드 힙합계 맏형으로 꼽히는 '가리온'
과 여성 듀오 '파이'를 비롯해 9개 힙합팀과 1개 R&B팀이 18곡을 선보였
다.
얼마전 디바, 업타운, 김진표 같은 인기 래퍼들이 랩 앨범- '1999 대
한민국'을 낸 적이 있다. 두 앨범에서 주류와 언더 '힙합'을 비교해 듣
는 일은 무척 흥미롭다. '1999 대한민국'엔 친근한 멜로디와 세련된 사
운드로 포장한 랩이 있다. 현란한 수사로 비판과 독설을 담았지만, 결론
은 사랑과 희망이다.
반면 '검은소리'는 사운드가 다소 거칠다. 부분적으로 거르지 않은 채
내뱉는 욕설이 거슬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힙합, 즉 길거
리하위문화의 날(생)에너지와 비판적 메시지에 충실하다. 몇 명일지는
몰라도, 우리 시대 젊은이들이 속앓이하고 있을 출구없는 분노와 좌절을
그대로 담아냈다.
'거리음악' 힙합이 정작 거리엔 없고 TV에만 득시글대는 건 어쩌면
하수도 없이 상수도만 있는 것같은, 또 다른 문화적 기형이다. '검은 소
리' 앨범은 그런 한국 힙합문화를 거부하는 몸부림이란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김종휘 가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