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 역사는 천재들의 역사다. 과학 기술의 비약적 진보와 인류
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낳은 20세기. 이 세기는 그러나 혁명과
대량살상, 인간 소외, 환경파괴로 얼룩지면서 수많은 천재들의 지적
탐구욕구를 발동시킨 세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사상은 위기의 터전
위에 꽃핀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 목말라 하는 사상의
프론티어들은 20세기 현실을 밑그림 삼아 갖가지 사상의 강물을 만들
었고, 수많은 에피고넨들이 이에 주석을 달았다. 어떤 것들은 수정됐
고 어떤 것들은 이미 절손의 운명을 겪기도 했지만 20세기가 잉태했
던 사상의 대하들은 인류 지성사의 움직일 수 없는 자산이고 새로운
세기에의 통찰이다. 저 세기초의 프로이트 무의식 이론으로부터 실존
주의 구조주의, 최근의 정보혁명 환경철학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사
상의 창조자들을 중심으로 그 유파, 국내 이식 인맥 등을더듬는 지성
여행을 주간연재로 싣는다. (편집자).
## 자연을 망치면 인간의 자유도 망친다...자연대상 윤리 일깨워 ##.
"신은 우리를 도울 수 없다. 우리가 신을 도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궁극적으로 돕는 길이다.".
한스 요나스는 어떠한 대안도 허용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생태학
적 위기의 문제점을 이렇게 간단히 서술한다. 신마저도 어찌할 수 없을
것같이 보이는 생태계의 파괴를 바라보면서, 요나스는 '자연으로 돌아
가라'는 낭만주의적 발상을 거부한다. 환경오염과 같은 부작용은 기술
에 의해 산출되었지만 결국 기술에 의해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 개량
주의도 반박한다. 인간에 의해 야기된 위험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의해
서만 해소될 수 있지만, 그것은 인간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생태학적 태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나스의 이 말은 두 겹의 절망으로 읽혀진다. 하나는 우리
가 기술권력을 더 이상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인간은 자
연을 지배하면 할수록 자유로울 수 있다는 베이컨적 이상은 인간을 언
제라도 파멸시킬 수 있는 악몽으로 폭로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 기술문
명과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실제로 인간다운 삶을 실현할 수 있는 힘과
수단을 제공하였지만,기술 진보에서의 지나친 성공은 역설적이게도 우
리를 파국적인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그러나 한스 요나스라는 이름을
오늘날 녹색 사유와 생태학적의식의 대명사로 만든 것은 다른 하나의
절망적 인식이다. 자연은 인간 없이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
각하면 정녕 위기에 처해있는 것은 인간 자신이지 자연이 아니라는 깨
달음이다. 요나스는 인간에 대한 절망을 결코 신의 구원에 대한 희망으
로 바꿔놓지 않는다. 우리의 탐욕스러운 권력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할
때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인간의 파국이지 결코 신의 구원이 아니다.만
약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면, 우리는 아마 환경오염을 조그만 사고 정
도로 치부하고 자연을 착취하는 자신에게 면죄부를 줄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우리가 신을 도와야 한다'는 요나스의 말은 신이 우리에게 부
여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도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인
것이다.
이렇게 요나스는 신에 대한 희망보다는 인간의 책임에 호소하고 있
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하여 자연을 지배하였지만 자연
에 대한 지나친 지배는 결국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파괴할
수 있다고 요나스는 경고한다. 서양인은 자유를 이제까지 인간 의지의
표현으로만 이해하여 왔다. 전통윤리는 오직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어
떠해야 한다고 말해줄뿐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다
른 사람의 의지와 자유를 훼손하지 않는 한 자연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은 자유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약 자연의 일부라면 자연은 결코 단순
한 수단일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요나스는 이러한 인간중심적 사고방
식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는 자연에 속해 있는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려면 이미 자연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토대인 자연을 황폐화
시키는 것은 결국 자유의 가능성을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요나스는 윤리의 대상영역을 자연으로 확장함으로써 현대철학의 생
태학적 전환에 결정적 기여를 한다. 사상사적으로 보면 그는 물론 인간
의 실존을 단순한 행위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에서
조명하고자 하였던 실존철학의 맥을 잇고 있다. 그는 전통 형이상학에
서 망각된 자연의 의미를 일깨움으로써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윤리학적
방향을 부여하였고, 그를 '사려깊은 경고자'로 명명한 희슬레는 인간과
자연을 살아있는 정신의 관계로 파악함으로써 요나스의 생태학적 존재
론을 계승하고 있다. 아무튼, 인간은 자유가 생명에 이바지하는 한에서
만 자유에 종사해야 한다는 요나스의 생태학적 휴머니즘은 오늘날 환경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자유의 진정한 진보는 우리를 위협하는 파
국에 대한 성찰 위에서만 가능하다. 이런맥락에서 위험사회로부터 출발
하는 기든스는 자연과 자유의 연대를 모색하는 요나스의 철학적 보수주
의를 제 3의 길로 규정한다. 자유가 언제든지 파국으로 변할 수 있다는
위험사회의 특성이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라면, 21세기에도 요나
스는 기술시대에 가능한 휴머니즘의 사상적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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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교수 약력)
▲계명대 철학과 교수
▲1956년 서울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구스부르크대 철학 석-박사
▲아우구스부르크대 전임강사 역임
▲저서 '허무주의의 정치철학, 니체에 의한 정치와 형이상학의
관계 재규정'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에 나타난 권력과 이성'
'탈이데올로기시대의 정치철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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