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치훈 등 선후배 그늘 벗고 '꿈틀'…본인방전 도전 자격 획득 ##.

♧조선진이 마침내 폭발했다.제54기 본인방전 도전자. 최근 거둔 이
'월척' 하나로 그는 최정상권 실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조치훈, 류시
훈, 김수준 등 재일 선후배 기사들의 뒷전에 가려 있던 그간의 설움을
한꺼번에 떨쳐냈다. 29세 총각 기사의 화려한 재탄생이다.

결과도 결과지만 도전 티켓을 따내는 과정이 더욱 극적이었다. 이번
도전자 선발리그서 중반까지 3승2패로 중위권에 머물던 그는 막판 2연
승,히코사카(언판직인) 구단과 5승2패 동률 선두로 일정을 마친 뒤 둘
간의 재 대국서도 승리하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리그 최종전서 꺾은 상
대는 같은 한국출신으로 동료이자 라이벌인 류시훈 칠단이어서 더욱 화
제가 됐다.

조선진이 본격적으로 바둑 수업을 받은 것은 80년 광주 주월 초등
4학년 때 염찬수(65) 사단을 만나면서부터. 지금도 광주에서 기원을 운
영중인 염 사범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재주 있는 꼬마가 있다길
래 오라고 했지. 5점인가 접고 두었는데 힘이 대단하더라구. 내 대마가
죽었어, 하하…" 염 사범의 집중 조련으로 선진은 만 1년 뒤인 81년 일
약 정선 수준으로 오르며 제2회 해태배 어린이 대회를 제패했다.

당시 낙농업에 종사하던 아버지(조규성)씨 등 가족들은 학급 반장에
다 수석을 지켰던 선진의 진로를 놓고 고민했다. 조선진의 형도 서울
법대를 거쳐 행정고시를 패스하는 등 수재 집안이다. 진학과 바둑의 기
로에서 결정을 위임받은 염 사범은 "프로기사로 대성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 짓고 그의 서울 유학을 주선했다. 현재 한국기원 사무국장인 정동
식오단 집에서 약 반년간 기거하며 한국기원에 드나들던 조선진에게 이
번엔 일본 유학길이 트인다. 윤기현 구단의 소개로 안또(안등무부) 육
단 문하에 들어간 것이다. 이때가 82년.

요다(의전기기) 등 동문 사형들과 어울려 바둑을 연마하던 선진은 도
일 2년만에 입단하더니 무서운 기세로 승단을 거듭했다. 86년 기성전
사단전 우승을 시발로 86년 유원배, 91년 신인왕전, 92년 신예 토너먼
트전을 거푸 제패했고 96년 기성전에선 팔단전 우승에 이어 최고기사
결정전까지 진출했다.

지난해엔 입단 14년만에 구단에 오르는 경이적 승단 속도를 보였다.

하지만 걸출한 수읽기, 막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고도 도전무대에는 서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번에 묵었던 한을 푼 것. 염 사단은 "온순한 성격
탓에 그동안 가진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본다"면서, 하지만
"어린시절에도 바둑에 지면 한 구석에서 울곤 하던 승부기질이 이제 본
격적으로 발현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도전권을 움켜쥔 이제 남은 타깃은 본인방 타이틀을 10년 연속 보유
중인 조치훈 구단. 조치훈으로서도 단일 기전 11연패라는 또 한번의 신
기록과 '대3관' 유지가 걸려 있어 물러설 수 없는 타이틀전이다. 올해
도전 7번기 첫 판은 5월 10, 11일 양일간 펼쳐진다.

그러나 이번 대결이 화제가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한국인끼리 '일본
바둑의 자존심'을 놓고 쟁패한다는 점에 모아진다. 본인방이란 원래 교
토소재 적광사란 절의 암자 이름. 이것이 훗날 도쿠가와 바쿠후시절 일
본바둑의 종가를 다툰 4대 명문 중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게 됐고, 그중
본인방 가가 선두를 차지하면서 본인방은 400여년에 걸친 일본 쟁기사
의 한 상징처럼 여겨져왔다.

세습제였던 본인방은 1939년 마이니치 신문 주최의 타이틀전으로 변
신, 오늘에 이르렀다. 이런 배경을 살펴보면 본인방이란 이름엔 일본
바둑의 역사와 혼이 배어 있으며, 최고의 역사를 지닌 본인방 전 역시
가장 일본적 타이틀인 셈이다. 심지어 한때는 대만 출신인 린하이펑이
나 조치훈 등외국 기사들이 의도적으로 본인방전서 전력을 쏟지 않는다
는 억측까지 나왔었을 정도. 96년 51기 때 조치훈 본인방에 도전자로
류시훈이 결정되자 큰 충격을 받았던 일본 바둑계는 3년만에 재현된 이
번 결과에 경악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어쨌거나 한국 팬들로선 모
처럼 마음 편하게 '동포들의 잔치'를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을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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