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공연인데도 소녀들은 아침 일찍 와서 기다렸다. "서 있지
말고 앉아서 기다리렴." 내 근심스런 표정과는 달리 "네"하며 웃는
소녀들의 얼굴은 생기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H.O.T 오빠들' 공연
을 보러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것이다.
난장판이 되리라던 예상은 기우였다. 4만5000여명 소녀들은 '오
빠들'을 위해 공연 몇시간 전부터 침착하게 줄을 섰고, 휴지 한 장
버리지 않았으며, 소리지르고 싶은 충동을 꾹 참아냈다. 참 기특했
다. 그런 소녀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 소중한 무대였다. 음악회가
끝나고 질서정연하게 공연장을 빠져나가던 소녀들은 카메라 플래시
가 터지자, 혹시 '오빠들'이 거기 있나 해서 우르르 몰려갔다. 한
소녀가 넘어지고, 카메라는 업혀가는 소녀를 뒤쫓고, 소녀는 경황
중에도 '아저씨 제발 찍지 마세요. 오빠들 인기 떨어져요'하며 통
사정이다.
H.O.T의 날개옷에서 떨어진 하얀 깃털 하나를 주운 소녀는 기
쁨을 감추지못하고, 다들 그게 부러운지 발길을 떼질 못했다. 이토
록 마음을 다해 열광하는 소녀들의 풀꽃 같은 사랑은 얼마나 값진
것인가? 그런데 어른들은 도시 골목골목을 유흥지로 변질시켜 이
풀꽃같은 아이들을 노래방으로, 비디오방으로 내몰고, 영계니 원조
교제니 유혹한다. 아이들을 두고 '왕따'니, '선생님을 핸드폰으로
신고하는 녀석들' 하면서 탓하기 앞서, 이들이 순결한 에너지를 마
음껏 발산할수 있는 공간,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주는 일이 더 급
하다. 무엇보다 어른들이 부끄러움을 깨닫고 먼저 변해야 한다. 아
이는 어른을 닮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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