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second…', 설익은 한국어 발음 정겹게 들려 ##.
요즘 청소년들은 '어머니 왜 나를 여기서 낳으셨나요?' 라며 한탄한
다고 한다. 농반진반이겠지만, 아닌 게 아니라 '외국(대부분은 미국)에
서 살다온' 경력은 한국에서 생활하는데 좋은 조건이다. 그 중 제일 중
요한 것은 언어 구사력이다. '바이링구얼(bilingual)'이면 금상첨화겠
지만, 영어만 잘해도 충분하다. 이 점은 가수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박정현은 '한국말'을 잘 못한다. 의사 소통에 장애가 될 정도는 아
니지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어로된 노래를 하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고 오히려 몇 가지 점에서는
유리하기까지 하다. 그녀의 노래는 토종 한국인이 부르는 한국 가요를
들을 때의 느낌(이른바 '뽕끼')과는 많이 다르다. 그건 마치 오랫동안
미국에 살다가 한국에 잠시 들른 친척이나 친구와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한국인의 발성구조는 한 음절 한 음절 똑똑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대
중가요의 경우에는 한 음표 당 한 음절이 오지 않을 경우는 어색하게
들릴때가 많다. 반면 박정현의 영어식 한국어 발성은 음표 사이를 굴러
다니고, 한 음표 내에서도 이리저리 위아래로 출렁대고, 전조도 슬쩍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들린다. 보통의 한국인이 발음하면 격음이 되
는 자음들은 그녀의 콧소리와 섞이면 '유성음화' 현상을 보이면서 달콤
하고 부드러워진다.
이렇듯 그녀의 음악을 듣는 재미는 일차적으로 가창의 전개를 따라가
는 재미다. 작은 볼륨에서 큰 볼륨까지 소화하는 풍부한 성량, 느린 저
음부터 고음의 스캣(scat)까지 구사하는 넓은 음역, 행복에 겨운 감정
부터 슬프고 외로운 감정까지 표현하는 다채로운 톤 등 그녀의 노래는
흥미진진하다. 하이브리드(hybrid)로 출발한 그녀의 창법은 어느 정도
토착화해, 이제는 가창력의 새로운 기준을 '정의'하는 듯하다.
그런데 김형석, 윤종신, 노영심, 하림, MGR 등 너무 많은 작사·작
곡가가참여하면서 앨범으로서의 일관성은 흔들리는 듯하다. 키보드, 현
악기, 프로그래밍된 리듬이 어우러진 '눈에 뭐가'(MGR 작곡), '편지할
께요'(노영심 작사/김형석 작곡) 등은 '잘 만들어진' 가요다. 그렇지만
첨단 테크노 음향을 도입한 '바람에 지는 꽃'(MGR 작곡), 펑키한 기타
리듬 위에 얹힌 '이별후 시작'(하림 작곡), 현악기 반주만으로 이루어
진 '고백'(박정현 작곡) 등의 시도들 모두가 성공적이지는 않다. 앞으
로는 자작곡 3곡에서 확인된 그녀의 작곡 능력이 더 많이 발휘되어야
할 듯하다.
그런데 그녀는 '무엇을' 노래하는 것일까. 사랑의 기쁨(눈에 뭐가,
편지할께요), 우정의 소중함(친구처럼, 이젠 돌려줄께), 이별의 아픔
(몽중인, 전야제) 같은 대중음악의 '관습적' 주제들이다. 이처럼 관습
적이면서도 단지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대중음
악의 신비다. 아직껏 풀리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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