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나나란 이름 어때요, 성별없고 외기 쉽고...".

"일주일에 닷새는 집 근처 한국음식점에 갑니다. 주인은 조총련
계인데, 그 아들이 한국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아주 분위기 있는
식당입니다. 북한 미사일이 일본 열도를 통과했다고 했을 때, 나는
정치적 판단에 앞서 그 사건으로 인해 나와 음식점 주인 사이에 아
무런 변화가 없기를 바랬습니다.".

일본의 인기 소설가 요시모토 바나나(35)는 음식을 통해 아직
발을 디뎌본 적이 없는 한국을 느낀다. 김치와 부침개를 즐겨먹는
다. 일본에서만 1백만부 이상 팔린 소설 '키친'의 작가 답다. '내
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라며 시작하는 그 소
설은 지난 89년 출간된 이후 영어, 불어, 독어, 중국어, 이탈리어,
노르웨이어 등 30여개국으로 번역됐고, 최근 한국어판이 민음사에
서 나와 한달만에 1만부를 찍었다.

그는 "한국 신문과의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라 사실 긴장됩니
다"라며 "한국 독자들이 제 책을 읽는다니까 고맙고 기뻐요"라고
말했다.

"소설 '키친'은 23세에 썼던 것이고, 되돌아보면 문장력이 어리
숙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되찾을 수 없는 패기가 느껴지기에 젊은
날의 좋은 추억으로 여깁니다.".

'키친'의 주인공은 할머니의 죽음으로 천애고아가 된 젊은 여성
미카케가 남자 친구 유이치 가족을 만나면서 전개된다. 유이치의
어머니는 원래 남성이었지만 성전환수술을 통해 여성이 된 경우.

'키친'은 이처럼 전통적 가족 개념과 성(성적) 정체성에 의문을
던진다.

"내 주변에 동성애로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나는 이성에
더 매력을 느끼는 쪽이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키친'은 젊은 이성간의 사랑을 진정한 우정의 한 양식으로 접
근하면서 20대에 진입한 여성이 인간적 우애의 본질에 눈뜨는 과정
을 그 또래 독자들이 흠뻑 공감하기 좋게 그린 청춘 소설이다.

바나나의 본명은 요시모토 마호코. 필명에 대해 그는 "열대지
방에서만 피는 붉은 바나나 꽃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며 "바나나라
고 하면 기억하기 쉽고, 성별 구분이 안되니까…"라고 말했다.

바나나 문학의 기본 주제는 소비 사회 속에서 성장한 일본 젊은
이들의 황폐한 내면 풍경 그리기다. 하지만 청춘의 우울한 절망을
몽환적이면서 재기넘치는 문체로 그리는 솜씨가 일품이다. 서양 언
론은 그의 소설에 대해 '도시 젊은이들의 삶을 꿈결처럼 그렸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탈리아에서 인기가 높고,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
가 전세계 문학 화제작만 골라서 펴내는 '폴리에 문고' 시리즈에
'키친'이 들어있을 정도다. 인터넷 '야후'에서 'yoshimoto'를 치면
인종과 국경을 초월해서 각국 독자들이 꾸민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
어갈 수있다. 지구촌 젊은이들이 바나나 소설 독후감을 통해 동세
대 의식을 나누는 '바나나 랜드'가 사이버 공간 속에 있는 것. 그
런데 정작 작가 자신은 그런 홈페이지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
다며 입을 벌린 채 놀람과 반가움을 동시에 표현했다. 그런데 '키
친'의 작가는 부엌을 공개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곤 "안
돼요, 너무 더러워요"라면서 손사래를 쳤다.

일본 문단 일각에선 바나나 소설이 순정 만화같다는 비아냥거림
도 없지 않다. 너무 가볍다, 상업적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평
가에 개의치 않는다.

"나는 만화를 보면서 성장했고, 언니가 만화가로 활동 중이예
요. 소설을 쓰는 동안엔 지금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에 가고 싶어
요. 리얼리즘에 별관심이 없다 보니 내 소설을 두고 만화적 상상력
운운하는 것에 별 반감이 없습니다.".

바나나의 부친은 일본 지식인사회에서 진보 사상가로 꼽히는 문
학평론가 요시모토 타카키. 하지만 바나나의 문학은 철저하게 탈리
얼리즘적이다.

현재까지 독신인 그는 "아버지가 내 문학에 별로 간섭하지 않았
지만, 아마 독자로서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는
"한국음식점에 갈 때마다 새 요리를 먹는 것이 기쁨"이라며 "아예
한국에 한번 가보고 싶어요"라면서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