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섹스는 신비스럽지 않다"…70년대 하위문화의 진실과 변명 ##.
♧ 대형 나이트 클럽으로 카메라가 미끄러지듯 경쾌하게 들어간
다. 누드쇼로 뜨거운 무대, 눈이 반쯤 풀린 테이블, 울긋불긋 조명
사이로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 생각해보니 음악은 디스코인 것
같다. 술배달하는 새파란 웨이터의 머리카락은 귀를 덮었고 아슬아
슬한 반바지 소녀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문득 시가를 문 중
년 사내가 웨이터를 유심히 바라본다.
이 대목까지 '부기 나이트(Boogie Night·3월 20일 개봉)'의 27
세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은 커트없이 단숨에 70년대 나이트 클럽
과 주인공들의 모습을 다 보여준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좋은 친
구들'의 나이트 클럽 신과 닮았다. 로버트 앨트먼 감독 '플레이어'
의 오프닝 신도 그랬다. 분명 앤더슨은 마피아 술집의 뒷문을 열어
본 스콜세지나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머릿 속에 들어가 본 적이 있
는 앨트먼의 제자다.
고등학교마저 중퇴한 17세 웨이터 에디(마크 월버그)는 성기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이유로 포르노 영화 감독 잭(버트 레이놀즈)
에게 스카우트된다.
포르노 업계의 대부로 군림하고 있는 잭은 자신이 아끼는 배우
들과 가족처럼 지내는 인물이다. 포르노 영화라고 할리우드 주류
영화와 다를 바가 전혀 없다. 제작자는 돈을 벌기 위해 궁리하고
감독은 나름대로 자신만의 영화 철학을 구축하려고 한다. 배우가
되고 싶어 얼쩡거리는 젊은이들은 스타의 이름과 돈을 꿈꾼다.
이들은 단숨에 성공해 풀장이 달린 저택에 살다가 약물과 알코
올에 중독되는가 하면, 어느새 살인을 하거나 거리에서 불량배들에
게 뭇매를 맞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약물에 찌들어 사
는 여배우 앰버(줄리안 무어)는 마약만 먹으면 전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어린 아들을 찾고, 잠잘 때나 섹스할 때나 옷은 다 벗어도 롤
러스케이트만은 벗지 않는 여배우 롤러 걸(헤더 그레이엄)은 감독
을 아버지로, 앰버를 어머니로 여긴다. 잭의 포르노 왕국이 제공하
는 것은 그들만의 가족인 셈이다.
'토요일 밤의 열기'가 다하고 80년대로 넘어가면서 포르노 산업
은 큰 변화를 맞는다. 포르노 필름을 보다 싸게 많이 팔 수 있는
비디오 시장의 해일이 덮쳐온 것이다. 이제 필름은 귀찮고 힘든
'예술'이며 방송용 테이프로찍어 대량으로 판매하는 비디오가 경쟁
력있는 산업이 됐다. 에디를 비롯, 주인공들은 저마다 파멸의 길을
걷는다. 피터 그리너웨이 감독의 '차례로 익사시키기(Drowning by
Numbers)'처럼.
결말은 '플레이어'가 그랬듯 사람은 죽어도 업계는 죽지 않는
시스템의 승리로 끝난다. '돌아온 탕아' 에디는 비디오로 업종 전
환을 한 잭의 품으로 돌아온다. 분장실에서 거울을 보며 혼짓말을
지껄이는 에디는 바로 '분노의 주먹(Raging Bull)'에서 나이트클럽
사회자로 변신한 퇴물 챔프 로버트 드니로가 자신에게 하던 다짐과
다르지않다.
어쨌거나 포르노를 다룬 작품이므로 관심은 섹스 신이다. 잘 생
각해보자.
보통 영화에 나오는 섹스 신은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걸 목표
로 삼는다.
포르노 영화를 소재로 삼은 '부기 나이트'는 오히려 그 반대다.
조감독 아내인 포르노 배우는 파티장 잔디밭에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 거침없이 섹스를 자행(?)한다. 영화 촬영 장면은 당연히 내내
섹스 신이지만 말초 신경을 건드리기보단 어느 공장의 제조과정을
보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보인다.
카메라의 피사체보다 카메라 뒤에 보이는 제작진들의 눈을 더
강조하기 때문이다. 감독은 줄곧 카메라 뒤에서 인물들을 관찰하다
가 무대뒤 주인공의 독백과 몸짓으로 영화를 끝맺는다. 그 마지막
몸짓이 미국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33cm나 된다는 그 큰 '물건'
을 실제로 보면 정말이지 '아무 것'도 아니다. 감독의 관심은 섹스
가 아니라 섹스의 탈신비화인 것이다.
이모우션즈, 마빈 게이, 멜라니 사프카, 보니 엠, 코모더스, ELO,
비치 보이즈 등 쟁쟁한 70년대 팝가수들의 노래들은 올드팬들에게
주는 젊은 감독의 보너스다. 152분.
(* 이성복 디지틀조선일보 시네마조선 편집장 = sblee@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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