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과장으로 근무하는 배기범(38·서울 은평구 갈현동)씨는
1주일중 사흘은 저녁 약속을 하지 않는다. 큰아들 재형(12)이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할 진영(7)이를 돌봐야하기 때문이다. 맞벌이 부부인
아내의 가사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각각 사흘씩 가정일을 맡아 하기
로 한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큰 아이의 방학숙제를 챙겨
주고 둘째에게는 책을 읽어준다. 아이들과 같이 퍼즐놀이도 하고 양
치질도 시켜 재운다. 그 사이 초등학교 교사인 부인 이순희(38)씨는
설거지를 마치고 고양-파주지역 초등학교 영어교사들을 위한 강의 준
비를 한다. 이씨는 가끔 집 부근에서 다른 교사들을 만나 밤 8시부터
2∼3시간 동안 수업혁신 연구팀 활동도 한다.


사진설명 :
배기범-이순희씨 부부가 저녁시간을 이용, 두 아들에게 동화를 읽어주고 있다.
배씨는 교사인 아내를 위해 적극적으로 집안 일을 돕고 있다.


부인 이씨가 적어주는 쇼핑 목록을 들고 집 부근 대형 할인점으로

가는 것은 일요일 아침마다 배씨가 하는 첫번째 일이다. 부인이 해야

할 연구과제가 많으면 배씨는 근처 놀이시설 등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다. 청소나 빨래는 이틀에 한번씩 집에 오는 파출부가 주로 한다.

그래도 집안청소나 정리할 일이 있으면 배씨가 주로 하고, 쓰레기
도 갖다버린다. 아무리 바빠도 아침이나 저녁 준비는 부인 이씨 몫.

이씨는 "가사분담을 하더라도 식사준비만은 직접 해야 한다는 생
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학 전인 둘째아이는 방학이 아닐 때는
부인 이씨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유치원으로 데리고 간다.

배씨는 86년 결혼 당시만 해도 집안 일은 당연히 여자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한 그해 첫아이를 낳은 아내가 "교단을 떠날
수 없다"며 한달 만에 학교에 나가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당시
영업부에 근무해 퇴근이 늦는 경우가 많았지만 빨래 정리를 돕는 등
밤늦게라도 할 수 있는 집안 일을 적극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이 어릴 때는 엄마가, 커서는 아빠와 주로 생
활하게 한다"는 것과 "음식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가 준비한다"는
원칙을 세워 실천하고 있다. 소득은 부부가 공동 관리를 하고 있다.

이씨는 "맞벌이부부로 잘 살아가려면 서로 도와주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면서 "남편이 많이 도와줘 큰 어려움없이 10년 넘게 교단에
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씨는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아내가
직장에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아이들과 함께 지내려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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