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가 지난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기록을 새해 벽두부터 깨뜨리
며 두달째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기획사 신씨네는 '편지'를 작년 11월22일 개봉한 이래 지난 22일까
지 77만2천명(서울 관객)을 모아 '접속' 77만명 기록을 넘어섰다고 밝혔
다. 전국적으론 1백70만명쯤 관람한 것으로 신씨네는 추산했다.
'편지'는 이제 한국영화 역대 흥행 1위작 '서편제'(1백5만명), 2위
'투 캅스'(87만명) 기록을 넘본다. '접속'이 그랬듯 '편지'도 관련 문화
상품들을 동반 히트시키고 있다.
환유(박신양)가 아내(최진실)에게 보낸 편지에 인용했던 '언젠가
그대가 괴로움 속을 헤매일때…'가 담긴 황동규 시집 '삼남에 내리는 눈'
(민음사간)은 '편지' 개봉이래 5만부나 팔렸다.
20년전 출간돼 한해 1천부밖에 안팔리던 시집이었다.
영상소설 '편지'(바다간)도 15만부가 나갔고 삽입곡 앨범 'The
Letter'(두손기획 제작)도 불티가 난다.
촬영지 광릉 수목원엔 커플들 발길이 잇따른다. '편지 증후군'이
라할만하다. 경제위기속에 관객이 줄었다고 울상짓는 극장가에서 '편지'
선풍은 이변이다.
사랑했던 남자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여자가 그 사랑의 크기를
남자가 죽은 뒤 깨닫는다는 설정은 비현실적 신파조다.
PC통신에 오른 반응에도 비판론이 적지않다.
"잘 만든 영화라기보다 당대 기호에 맞춘 팬시상품"이라거나 "한참
울었다. 입장료가 아까워서"라고 빈정거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관객은 왜 계속 몰리는 것일까.
'울리는 한국영화' 전통을 '편지'가 아주 오랜만에 되살린 덕분이
라는 시각이 많다. 카타르시스 수단중에 눈물만한 것도 드물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씨는 "머리론 허점 투성이라고 분석하면서도 눈
물을 흘리게 만드는 영화"라고 말했다.
경박한 로맨틱 코미디 범람에 식상한 관객들에게 '편지'는 참신한
메뉴가 됐다. 멜러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젊은 관객 구미에 맞춰 세심
하게 배려한 것도 주효했다.
편지 한통이 사랑을 영원히 이어준다는 동화적 설정, 사랑의 추억
을 일상 사물에서 수채화처럼 드러낸 화법이 먹혔다. IMF한파는 오히려
흥행 촉매가 됐다.
세상이 우울할 때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동화적인 사랑이야기는 '울
고 싶은 사람 뺨을 때려주며'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과거에도 세상이 어수선할 때마다 '미워도 다시 한번'같은 영화가
히트했다. 최루 영화는 난세와 함수관계를 지닌다. 요즘도 평일 5천
명, 주말 1만명쯤이 '편지'를 본다.
서울극장은 "이런 추세라면 3월까지 롱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
다. ( 김명환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