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만화 이전에 한국 고유의 만화는 없었을까. 근대 한국 만
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만화라는 말은 언제부터
한국어에 뿌리를 내렸을까.
만화평론가 손상익씨가 이같은 질문을 던지면서 4년여의 자료 수집
과 집필 끝에 「한국만화통사」(프레스빌)를 내놓았다. 만화라는 말은 물
론 금세기초 일본에서 수입된 것이지만, 그전에 대한매일신보 등의 신문-
잡지들은 삽화, 해화, 철필사진, 그림 이야기 또는「다음엇지」라는 말도 썼
다.
「다음엇지」란 「다음칸의 내용은 어찌될까」의 뜻을 담고 있는 순우
리말.우리 사회에서 만화라는 용어 통일이 시작된 것은 1923년부터다. 그
러나 「한국만화통사」는 우리 만화의 기점을 금세기초로 잡지 않는다.
1천5백년전 고구려 고분 벽화가 인물의 과장된 표현을 통해 만화적
요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초기형태의 만화」라고 규정한다. 손씨는 이
밖에도 고려시대의 불교판화부터 조선시대의 민화, 풍속화, 인물화 등에서
만화적 표현을 지적한다.
가령 1581년에 간행된 「성인록」에 수록된 정몽주의 인물 판화는 얼
굴의 특징을 마치 펜선으로 터치하듯 여러 겹의 선으로 묘사, 오늘날 신
문의 정치인 캐리커처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손씨는 1703년 숙종 3년에 조구상이 제작한 판화 「의우도」가 일부
이론가들 사이에서는 세계 최초의 4칸 만화로 일컬어진다고 지적했다. 밭
을 갈다가 호랑이에게 습격당한 주인을 구하려고 했던 소의 실화를 4개의
이야기 그림으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그 묘사의 방식도 오늘날의 만화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또 조선시대의 풍속화가 신윤복이야말로 그 시대 최고의
「성인만화작가」라고 꼽으면서 풍속화의 등장은 정통 회화에서 초기형태의
만화가 장르 분화를 꾀했던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은 개화기(1883∼1910)가 본격적인 만화사의 출발점이라고 보
면서 대한민보는 요즘 프랑스의 처럼 1면의 톱사진 대신 만화를 활
용, 만화시대를 여는 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이 책은 식민지시대까지 우리의 만화가들이 당국의 검열에도 불구
하고 반일 정신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던 과정을 당시의 구체적 작품들을
통해 입증한다.
식민지시대의 만화 중 걸작들을 신문 잡지에서 찾아내 시대별 주제
별로 분류하고, 만화의 풍자적 장면들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식민지시대 사회 연구의 좋은 길잡이 역
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당시 만화계를 이끌었던 청전 이상범, 심산
노수현 등 화가들과 이주홍 등의 문필가들이 만화를 천시하는 풍토 때문
에 자신의 이력에서 만화가로서의 활동을 스스로 지웠다는 사실을 지적하
면서 이 책을 계기로 만화의 위상이 재정립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