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한 벌로 하나가 되는 스포츠 ‘브리지(Bridge)’처럼,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 회의도 화합의 장이 되길 바랍니다.”
23일 오전 경북 경주의 한 호텔에서 만난 김혜영 한국브리지협회 회장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김 회장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며느리다. 정 명예회장의 7남인 정몽윤(70)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 부인이자 고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 딸인 김 회장은 이날 APEC 회원국 중 미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 14국과 별도 초청국(이탈리아) 등 총 15국에서 선수 105명을 초청해 브리지 대회 ‘2025 APEC 브리지 토너먼트’를 열었다. 10월 ‘2025 경주 APEC’을 앞두고 회원국 선수들을 먼저 초청해 한국을 알림으로써 APEC의 성공을 기원하겠다는 취지다.
브리지는 2대2로 팀을 나눠 52장의 플레잉 카드로 치열한 두뇌 싸움을 벌이는 전략 스포츠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날 오전 경기장 곳곳에 놓인 테이블 22개에선 44팀이 1시간 30분 동안 침묵을 지키며 경기를 벌이고 있었다. 다양한 국적과 연령대의 선수들이 자신의 팀에 가장 유리한 카드를 고르느라 미간을 찌푸렸다. 일부는 이미 테이블에 올려진 카드를 보고 경우의 수를 계산하려 눈을 바삐 굴렸다. 한 경기가 끝나자 이긴 팀은 홀가분하게 테이블을 떠났고, 남은 팀은 복기하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김 회장은 지난 2010년쯤 무릎을 다쳐 재활 치료를 받던 중 브리지를 처음 배웠다. 김 회장은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브리지 혼성팀 국가대표로 출전하면서 태극 마크를 달았다. 당시 현대가(家)의 며느리가 국가대표가 됐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면서 브리지 종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 대표팀의 김대홍(33)씨는 “브리지를 처음 시작하던 2015년쯤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은 브리지 대회에서 늘 꼴등을 차지했다”며 “이젠 외국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먼저 알은 척을 해줄 정도”라고 했다.
김 회장은 브리지와 APEC 2025를 알리기 위해 지난 3개월간 대회 준비에만 매달려 살았다. 그는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만났던 선수들에게 직접 연락해 대회에 초청했다”며 “올해 한국에서 APEC이 열리는데 이를 기념하며 한국에서 경기를 해달라는 연락에 선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한국을 찾아와줬다”고 했다. 미국 선수인 션 황(36)은 “브리지 대회 덕분에 한국도 처음 방문해봤고 APEC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며 “입국한 날부터 몰랐던 것들을 계속 배워갈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김 회장은 “남녀노소가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브리지 덕분에 내가 잠시 다쳤을 때도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며 “그때의 나에게 하나의 ‘다리’가 되어줬던 브리지가 이번 경기에서도 모든 선수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제게 브리지가 그러했듯이 다가오는 APEC도 회원국 간 탄탄한 ‘다리’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