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시에서 5년째 전업 배달 라이더로 일하고 있는 최윤석(가명)씨가 지난달 16일 부천역 광장에서 스마트폰 앱(애플리케이션)에 뜬 배달 요청 내역들을 확인하고 있다. 세 살 난 아들과 아내를 먹여 살리기 위해 그는 매주 80시간을 일하며 월 300만원쯤을 번다. 자신을 위해서는 한 달 30만원 안팎만 식비 등으로 지출하고 나머지는 모두 아내에게 보낸다. /고운호 기자

한국은 ‘배달 공화국’이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배달은 국민이 편리하게 즐기는 식(食)문화를 떠받치는 산업이자 일상이 됐다.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 거래액은 2019년 약 9조7400억원에서 작년 약 26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23만7000명(2022년)의 라이더(배달원)가 일한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이들은 편리한 배달 산업을 일군 일등 공신이었다. 웬만한 대기업 근무자 못지않은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잇따랐다. 특별한 자격 없이도 자유롭고 쉽게 라이더가 될 수 있어, 실업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배달의 폭발적인 성장세는 일상 회복과 함께 주춤해졌다. 라이더 수도 포화에 이르렀다는 분석이 많다. 자연스레 ‘고소득 라이더’는 많이 줄었다. 경력·학력 등 이른바 ‘스펙’ 없이도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을 보고, 라이더가 된 사람들 사이에선 “배달마저 어렵게 되면 이제 갈 곳이 없다”는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교통사고 우려나 거리에서 오토바이를 오래 타서 생기는 허리 통증, 호흡기 질환 등도 이들의 노후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상당수가 프리랜서란 이유로 노동시장 밖에서 방치되고 있다.

그래픽=정인성

경기 부천시에서 일하는 고졸 라이더 최윤석(42·가명)씨의 고민도 비슷하다. 그는 요즘 매주 80시간을 일하며 월 300만원쯤을 번다. 세 살 난 아들과 아내를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라이더의 교통사고 소식이 들리거나 몸이 삐걱거릴 때면 걱정이 커진다. 최씨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 다음에는 뭘 할까 늘 걱정”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일반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배달 산업의 ‘이후’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고 지적한다. 현재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이 부족한 라이더들은 지금은 문제가 없더라도 50대 안팎 때 다른 직업으로 갈아타지 못한 채 불안정한 일자리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들이 빈곤한 노후를 보내지 않게 사전에 전직(轉職)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신입 라이더는 본인과 시민들을 위한 안전 교육을 받게 하는 게 중요하다. 전태일재단은 이와 더불어 “라이더의 부담이 되는 보험료를 지금보다 낮출 수 있도록 정부·지자체, 배달 업체, 보험 업계 등이 함께 대안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아침 끼니는 늘 포장마차 어묵 - 지난달 16일 오전 부천역 인근의 한 노점에서 만난 라이더 최윤석(가명)씨. 이 노점은 최씨가 매일 일과 전 어묵과 국물로 배를 채우는 아침 식사 장소다. 그는 “2~3년 뒤에는 라이더를 그만둬야 할 것 같은데 뭘 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지난달 16일 오전 8시 배달 라이더 최윤석(42·가명)씨는 부천역 광장 노점에서 어묵을 먹고 있었다. 매일 일과 전 들르는 아침 식사 장소다. 5분쯤 지나 첫 콜이 잡히자 오토바이 시동을 걸고 서둘러 광장을 떠났다. 다시 그를 만난 건 이날 오후 8시쯤. 이날 12시간 동안 약 110㎞를 달리며 18건을 배달하고 9만6500원을 벌었다.

그는 매주 80시간 안팎 거리를 돌아다닌다. 부천역 인근의 월세 45만원짜리 단칸방에서 동료 라이더 3명과 잠만 자고 나와 종일 거리를 달린다. 이렇게 버는 돈은 보험료와 오토바이 기름 값을 제하고 한 달에 300만원 남짓. 자기 밥값 30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경기 구리시에서 아들과 사는 아내에게 보낸다.

부천 토박이 최씨는 고졸로, 라이더가 네 번째 직업이다. 20대 초반 아버지가 하셨던 일인 상하수도 정비 일을 2~3년 같이 했는데 “길에서 보도블록을 나르다 보니 잘 빼입은 회사원들과 비교돼 어린 마음에 창피해 일찍 그만뒀다”고 했다. 이후 중고차 판매를 10년쯤 했다. “다양한 손님을 상대하며 지쳐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인테리어 공사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직후 코로나 사태가 시작됐고, 아내가 임신한 것도 알게 됐다. 가끔 부업 삼아 배달을 하던 그는 자연스럽게 전업 라이더가 됐다고 한다.

코로나 때는 월 600만원 이상을 벌 정도로 수익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절반이 됐다. 뉴스 등에서 드론 배달 이야기가 나오면 ‘몇 년 뒤 배달은 더 어려워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5년 차에 접어드니 피로가 풀리지 않고, 일부 자동차 운전자가 라이더들을 함부로 대하는 걸 보면 속도 상한다. 다른 일을 하려 해도 당장 뭘 할지부터가 고민이다. 그는 “택시, 버스 운전을 하는 것도 고민 중”이라고 했다.

최씨의 걱정처럼 라이더는 수명이 짧다. 산업연구원이 라이더 202명을 조사한 결과 87%가 15~44세였다. 55세 이상은 5명(2.5%)밖에 없었다. 쉰만 넘어도 하기 어려운 일이란 뜻이다. 또 코로나를 거치며 소득도 서서히 줄고 있다. 2022년 기준 전업 라이더는 평균 주 57시간 일해 월 256만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당 약 1만300원으로, 2022년 기준 최저 시급(9160원)보다 약간 많았다.

라이더를 오래 한다 해도 경력이나 전문성이 쌓이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학력이나 경력 등이 부족해 이 분야에 뛰어든 사람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적잖은 사람이 중년 이후 라이더를 그만두면 자칫 일용직 노동 시장 등에만 머물 수 있다고 우려한다. 노인 빈곤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민순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라이더를 첫 직업으로 삼은 젊은 층은 기업 등에 가도 조직 생활을 힘들어하는 성향도 나타나 전직이 쉽지 않고, 라이더로 전직한 청년·중년층은 그 분야의 트렌드를 따라가기 어려워 할 수 있다”며 “라이더 이후를 대비해 틈틈이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지자체 등이 전직 교육 기회를 적극적으로 줘야 한다”고 했다.

대전 라이더 박상준(43·가명)씨 역시 미래 고민이 크다. 대기업 협력사에서 영업직 직원으로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건강이 나빠져 그만뒀다. 코로나 사태로 배달 붐이 일었던 2021년 상대적으로 맘 편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배달을 시작했다. 하지만 약 2년간 하루 12시간씩 오토바이를 타다 허리 건강이 나빠졌다. 그래서 그는 지금 계약직으로라도 일하려고 3개월째 여러곳에 지원서를 쓰고 있지만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IMF 등 경제 위기를 거치며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치킨집, 카페 등 자영업에 뛰어들었는데 라이더는 그보다 진입 장벽이 더 낮다”며 “라이더를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정확한 종사자 수, 평균 수익 등 기초적인 산업 현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12대88 사회

12대88은 국내 전체 임금 근로자의 12%인 대기업 정규직(260만명)과 나머지 88%인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1936만명)로 나뉜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상징한다.

〈특별취재팀〉

▷팀장=정한국 산업부 차장대우

조유미·김윤주 사회정책부 기자

김민기 스포츠부 기자

한예나 경제부 기자

양승수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