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의 한 오피스텔에 혼자 사는 30대 여성 인터넷 방송인(BJ) A씨는 지난 3일 새벽 소스라치게 놀랐다. 오전 5시쯤 현관문 밖에서 ‘삑삑삑삑’하고 문에 붙은 버튼식 잠금장치에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나더니, 한 남성이 문을 열고 집 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누구세요?”라고 했고, 이 남성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달아났다고 한다. A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경기 분당경찰서는 지난 8일 그를 주거침입 혐의로 체포했다. 그는 40대 남성으로 A씨 방송을 자주 시청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고 한다.
경찰과 A씨에 따르면 이 사람은 A씨가 방송에서 한 말들로 그의 집을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또 A씨가 생일을 현관문 비밀번호로 설정해놨을 수도 있겠다고 추측을 했는데 우연히 그게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A씨는 “모르는 사람이 현관문에 서있는 것을 보고 밀폐된 공간에서 소리 소문 없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했다.
열쇠를 일일이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다보니 요즘 비밀번호를 입력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잠금장치를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비밀번호가 노출돼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도 늘고 있다.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이주환 의원에 따르면, 환경부에서는 간부급 공무원이 회식 후 동료 여직원을 집에 데려다주면서 현관 비밀번호를 엿보고 기억해뒀다가 몰래 그의 집에 들어가 사생활을 엿본 것이 드러나 파면됐다.
지난 1월과 3월 대전과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에서 금품을 훔치고 달아난 김모(45)씨는 현관문 비밀번호 장치에 형광펜을 칠한 뒤, 집주인이 버튼을 누른 흔적을 보고 비밀번호를 알아내 집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과거엔 잠금장치 번호판에 밀가루를 묻히거나 문 주변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사례도 있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비밀번호를 설정할 때 집주인의 기본 정보로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생일이나 기념일은 되도록 피하고, 무엇보다 주기적으로 비밀번호를 변경해야 한다”면서 “비밀번호를 누른 후 흔적이 남지않게 한번 닦거나 평소에 주변을 잘 둘러보는 등 보안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