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지난 21일 낮 경기 화성시 쿠팡 물류센터 동탄지점 작업장 내부는 뜨거운 공기에 습기가 더해져 찜통 같았다. 연면적 2만7000㎡(8000평)의 동탄지점은 전국 100여 곳 쿠팡 물류센터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직원 수천명이 24시간 교대로 돌아가며 택배 상자를 트럭에서 내리고 싣는 일을 반복한다.
본지 기자는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동탄지점 2층에 있는 분류장 캠프에서 택배 상자를 운반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5500㎡(1660평) 넓이 작업장 한가운데 놓인 길이 65m 운반 레일 주변에서 20명이 작업반장의 지시에 따라 일을 시작했다. 작업자들의 옷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다.
하지만 내부 열기를 식혀 줄 냉방 기구는 레일 바로 옆에 있는 대형 선풍기 9대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작동하는 건 5대뿐이었다. 레일과 떨어져 택배 상자를 카트로 운반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그 선풍기 바람도 쐴 수 없었다. 기둥 10곳에 벽걸이 선풍기가 두 대씩 걸려 있었지만 3m 높이에 있어 바람은 직원들에게 닿지 않았다. 이 또한 절반 이상 고장 나 있었다.
지난 20일 쿠팡 물류센터 직원들은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부터 에어컨을 들고 쿠팡 물류센터 동탄지점까지 행진하는 시위를 벌였다. 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인 이들은 “쿠팡이 냉방 기기 설치에 답하지 않아 직접 에어컨을 설치하러 간다”며 “최소한의 노동 환경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23일에야 동탄지점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당시 쿠팡 측은 “대형 천장형 실링팬, 에어 서큘레이터 등 냉방 장치 수천대가 가동 중”이라고 반박했다.
본지 기자가 동탄지점의 상황을 확인한 결과, 쿠팡 측에서 설치했다고 한 에어 서큘레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쿠팡 물류센터 작업자에게는 낮 12시가 되면 20분의 휴식 시간을 준다. 땀에 흠뻑 젖은 사람들은 레일 위에 누워 대형 선풍기 바람을 쐬며 옷을 말렸다.
이곳에서 3년간 일했다는 44세 A씨는 “여름에 작업할 때는 더위 때문에 머리가 핑 돌 때가 있다”면서 “에어컨을 설치해주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선풍기라도 제대로 고쳐 놨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에는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 직원도 있다고 했다. 오후 2시 30분까지 4시간 동안 이곳 2층 분류장에서 20명이 처리한 택배 상자는 5000여 개였다. 작업이 끝날 때 그들의 모자와 마스크 끝에도 땀이 맺혔다. 다른 지역에 있는 쿠팡 물류 캠프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7일 오전 11시 10분쯤 기자가 찾은 서울 영등포구 쿠팡 강서1 물류캠프에는 선풍기가 한 대뿐이었다. 면적이 1000㎡(300평)로 동탄지점보다 규모는 작지만, 서울 내 주요 물류센터 중 하나다. 이곳에는 관리자가 앉아 있는 책상 근처에 대형 선풍기 한 대가 있었다. 에어컨이나 에어 서큘레이터 같은 냉방 기구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동탄지점 작업장보다 개방된 구조라 통풍은 잘됐지만 낮 기온 32도여서 뜨거운 바람만 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20대 남자 직원은 “휴대용 미니 선풍기를 들고 다니면서 땀을 식힌다”고 했다.
쿠팡 측은 “물류센터에 있는 휴게실에는 에어컨을 설치했고 안성 물류센터의 경우 작업장에도 에어컨을 설치했다”면서 “물류센터 구조상 냉방 시설을 통해 일률적으로 온도를 낮추기 어렵고, 다른 회사에 비해 폭염 대비가 잘돼 있다고 본다”고 했다.
쿠팡 노조는 지난달부터 서울 송파구의 쿠팡 본사 사옥 로비를 점거하고 있다. 이들은 폭염 대책과 함께 유급 휴게 시간 부여,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쿠팡으로선 이런 노조 요구가 전반적으로 무리하다고 볼 수 있지만 폭염에 대해선 조치를 취해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