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협약(UNFCCC)의 26번째 연례회의(COP26)를 앞두고 세계의 움직임이 부산하다. 미국과 EU는 17일 ‘주요 경제국 에너지·기후 포럼’에서 메탄 배출량을 2030년까지 30%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 등 9국 정상이 참석했다. 유엔 기후협약 사무국은 같은 날 각국이 6월 말까지 제출한 ‘2030 국가 기후 실천 약속(NDC)’을 종합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2015년 체결된 파리협약의 당사국 191국 가운데 113국이 파리협약 때보다 ‘상향된’ NDC를 제출했다. 약속들이 이행된다면 113국의 2030년 배출량은 2010년보다 12% 감소한다. 기온 상승을 ‘산업혁명 전 대비 1.5도’로 억제하려면 2030년까지 45% 감축해야 한다. ‘상향 NDC’들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됐다. 중국, 인도 등 인구 대국은 아직 ‘상향 NDC’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한국은 10월 말까지 제출 예정이다.
기후 위기는 선진국과 개도국이 합심해야 극복 가능하다. 이산화탄소는 어느 곳에서 배출되건 지구 전역으로 고르게 확산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지구상 어느 나라가 온실가스를 감축하건 기후 붕괴 완화에 같은 효과가 있다. 결국 각국은 다른 나라가 앞장서 배출을 줄여주고 자국은 무임승차하기를 원한다. 전형적인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the Commons)’ 상황이다. 1990년대 초반 기후협약 체결 시점에는 선진국 그룹 배출이 개도국 그룹을 압도했다<그림>. 그래서 1997년 교토의정서 때는 선진 37국(Annex I)에만 5% 내외의 배출 감축 의무를 부과했다. 선진국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 후 중국을 필두로 개도국 산업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사정이 급변했다. 2017년 개도국(Non-Annex I) 그룹의 배출 비율 59%가 선진국(Annex I) 그룹의 37%를 훨씬 뛰어넘었다. 개도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 없이 기후 붕괴를 저지할 방법이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온실가스 오염을 주도한 것은 선진국이다. 피해는 열대 밀집 개도국에 집중되고 있다. 개도국들은 늦었지만 선진국처럼 발전해 보겠다고 산업화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화석연료를 쓰지 말라고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개도국 입장에선 온실가스를 감축해봐야 효과는 전 세계로 분산되지만, 그러느라 경제성장을 늦출 때의 피해는 자기 몫이다. 더구나 선진국의 1인당 배출은 개도국의 3배로 심한 불평등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개도국을 온실가스 감축 대열에 합류시키고자 나온 아이디어가 각국 자율의 기후 실천 약속(NDC)을 제출케 하는 방식이다. 2015년 파리협약에서 채택됐다. 교토의정서처럼 수치화된 감축 목표를 강제하면 개도국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대신, 각국이 스스로의 발전 단계와 사정을 감안해 2030년까지의 목표를 제시하게 한 것이다. 일종의 ‘마이 웨이(My Way)’ 방식이다.
선진국들은 또 개도국 동참을 설득하려 “2020년부터 기후 취약국들에 연간 1000억달러씩 재정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OECD의 지난 17일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선진국 그룹의 개도국 기후 관련 지원은 796억달러 정도였다. 국제 자선 기구인 옥스팜은 상환이 필요 없는 순수 원조는 2018년 기준 190억~225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집계했다. 최근 EU는 개도국 지원 규모를 연 250억달러에서 300억달러 수준으로, 미국은 종전 약속한 연 57억달러를 114억달러로 늘리겠다고 각각 밝혔다.
선진 주요국들은 대체로 자국민 60% 이상 접종을 완료했다. 아프리카는 19일 현재 3.6%에 불과하다. 선진국들은 백신은 사재기하면서 자기들이 망가뜨려 놓은 기후는 개도국과 함께 해결하자고 하고 있다. EU는 지난 7월 탄소국경세 시행 일정까지 밝혔다. 미국에서도 유사 법제가 거론되고 있다. 선진국의 탄소국경세는 기후 붕괴 방지를 명분으로 삼아 개도국의 시장 접근권을 제한하는 용도로 쓰일 것이다. 한 쪽으론 개도국을 쓰다듬고, 다른 쪽으론 을러대고 있다.
관건은 중국에 있다. 중국은 배출 비율 28%의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선진국들은 중국이 ‘2030년 배출 정점 도달’이란 기존 NDC를 강화해 ‘정점 도달’ 시점을 2025년으로 당겨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국, 영국, 호주가 지난 15일 중국 견제를 위한 3국 안보 협력체 오커스(AUKUS)를 발족했다. 중국이 반발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글래스고 회의에서 얼마나 협조할지 미지수다.
한국은 탄소중립법에서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으로 목표 최저선을 정했고 최종 수치는 막판 논의 중이다. 한국은 2015년 6월 파리회의를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압박 전화를 받은 뒤 NDC 목표를 올려야 했던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미국과 COP 주최국 영국에서 다양한 신호를 받고 있을 것이다. NDC는 한번 제출하면 후퇴시킬 수 없는(No Backsliding) 국제적 약속이다. 임기 막바지 정부의 결정이 차기, 차차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까지 묶어놓게 된다. 대통령 혼자 돌연 탄소 중립을 선언해놓고 보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기후 붕괴 대처라는 국제 흐름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국익을 보호하는 현명한 길을 찾아가야 한다.
[온실가스 에너지양, 히로시마 원폭이 초당 22발 폭발하는 것과 맞먹어]
유엔 기후과학기구(IPCC)는 8월 7일 지구의 기후 상태를 종합 평가한 6차 보고서의 요약본을 발간했다.
보고서는 1850년 이후 인간이 배출해 대기 중에 추가로 누적된 130ppm 온실가스의 작용력을 지구 표면 ㎡당 2.72W인 것으로 계산했다.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의 온난화 작용력을 모두 더한 값이다. 2013년 5차 보고서 때는 2.29W였다.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하려면 1.9W까지 끌어내려야 한다.지구 표면에 닿는 태양 에너지는 ㎡당 340W다. 온실가스 작용력 2.72W는 태양 에너지의 125분의 1인 것이다. 전 지구 표면 510조㎡에 2.72W짜리 미니 전구를 1m 간격으로 설치해놓은 것과 같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2019년 온실가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인류의 총 에너지 소비량은 58만4990페타줄(PJ, 1PJ=1000조줄)이었다. 총 온난화 작용력은 이것의 74배인 4329만PJ이다. 온실가스는 전 인류가 소비하는 연소 에너지의 74배만큼인 것이다. 이는 63테라줄(TJ, 1TJ=1조줄)의 에너지를 발산했던 히로시마 원폭이 매초 22발씩, 연간 6억8725만발 터지는 것과 같은 크기이다.
[글래스고 기후변화 회의]
10월 31일부터 11월 12일까지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26번째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회의(Conference of the Parties·COP). 2020년 예정이었던 것이 코로나로 1년 연기됐다. 당사국 회의는 1992년 브라질 리우 지구환경회의에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이 체결된 후 1995년부터 매년 열려왔다. 1997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COP3 때 선진 38국(Annex I)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과한 교토의정서가 체결됐다.
2015년 프랑스 파리의 COP21에선 191개 당사국 모두에 ‘2030년까지 자발적으로 실천할 기후 정책(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NDC)’을 정해 보고한 후 이행토록 하는 파리협약이 체결됐다. 파리협약에 따라 당사국들은 매 5년마다 이전 정책 목표(NDC)를 상향 조정해 제출해야 한다. 글래스고 기후회의가 상향 목표 제출 시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