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네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아버지는 이렇게 운을 뗐다. 5일 오전 8시 20분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대학생 손정민(22)씨의 고별식과 발인식이 열렸다. 손씨의 가족과 친지, 친구 등 50여 명이 참석해 빈소 복도를 가득 채웠다. 손씨의 영정 옆에는 친구들이 선물한 캐릭터 인형과 편지가 놓여 있었다. 이날 손씨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일반 시민도 있었다.

5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서 대학생 손정민(22)씨의 발인식이 열렸다. /뉴시스

손씨의 아버지 손현(50)씨는 “네가 우리 가족에게 왔던 시간이 짧은데, 넌 참 많은 것을 (가족에게) 줬고 인생이 살만하다는 것을 알려줬다”며 “다시 만날 그날까지 잘 있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네가 결혼하는 것도 보고, 애기도 보고 싶었는데 참 아쉽다”고 말하다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손씨의 대학 친구는 “정민아, 정말 고마웠다. 그립다. 너의 백만불짜리 미소가 아른거린다”며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너란 존재는 절대 잊지 못할 거야. 고맙고 사랑한다, 내 친구야”라고 했다.

◇실종신고 닷새 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손씨

손씨는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 A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실종된 후, 신고 닷새 만인 30일 숨진 채 발견됐다. 실종 장소 인근이었던 반포한강공원 수상택시 승강장에서 20여m 떨어진 차가운 물 속 안이었다. 손씨를 처음 발견한 민간구조사 차종욱(54)씨는 “25일부터 만조(滿潮) 시기라 한강물이 3일간 하류에서 상류로 역류했고, 오늘 다시 물이 내려오면서 시신이 이곳으로 떠내려온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5일 새벽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시다 잠든 손정민씨가 실종됐다. 정민씨 부모는 반포한강공원 곳곳에 정민이를 찾는 플래카드와 전단을 붙이고 애타게 찾고있다./전기병 기자

유족 측은 지난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부검 신청을 했다. 발견 당시 손씨의 시신 뒷머리에 손가락 두마디 정도 깊이의 자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과수는 1차 구두 소견에서 ‘귀 뒷부분 자상’이 직접적인 사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과수 정밀 검사 결과는 이달 중순쯤 나올 예정이다.

한때 손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됐을 무렵 인근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남성 3명이 실종 사건과 관련이 있을거라는 추측이 있었다. 손씨가 실종된 지난달 25일 오전 4시 30분쯤 반포한강공원 편의점 옆 자전거 대여소에서 남성 3명이 한강변 도로를 향해 빠르게 뛰어가는 장면이 CCTV에 담긴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동네 선후배 사이로, 손씨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학퀴즈 왕중왕전'에서 준우승 차지한 아들, 마지막 모습은…

손씨는 경기고 재학 시절 ‘장학퀴즈 왕중왕전’에 나가 준우승을 할 정도로 수재(秀才)였다. 중앙대 의과대학 본과 1학년인 아들이 실종된 것은 지난 25일. 전날 밤 11시 대학 동기인 친구 A씨를 만나겠다며 반포한강공원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본 게 마지막이었다. 한강공원 CCTV에,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가는 손씨 모습이 찍혔다. 손씨는 A씨를 만나서도, 이튿날 오전 1시24분까지 ‘생각보다 앉아서 노는 사람이 많다’ ‘재미있게 놀고 술 조심해라’와 같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어머니와 주고받았다. 오전 2시쯤엔 휴대전화로 서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찍었다.

오전 3시30분쯤, A씨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정민이가) 취해서 자는데 깨울 수가 없다”고 했다. 둘은 동네 친구로 함께 해외여행도 갈 만큼 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A씨는 오전 4시30분쯤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챙겨 자신의 집으로 갔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자고 일어나보니 정민이가 옆에 없었던 것 같고 그래서 집에 갔다”고 진술했다.

◇새벽 5시 30분, 온 가족 나와 아들 찾았지만…

혼자 귀가한 A씨를 본 그의 부모는 손씨를 찾기 위해 함께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결국 찾지 못하자 오전 5시30분쯤 손씨 어머니에게 실종 사실을 알렸다. 이후 가족들이 나섰지만 손씨를 찾을 수 없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술에 취해 당시 상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혼자 귀가할 때 A씨는 손씨 휴대폰을 잘못 가져오기도 했다. 손씨 부모가 오전 6시쯤부터 한강공원에 남아있을 A씨 폰으로 전화를 수차례 걸었지만, 계속 받지 않다 오전 7시쯤 전원이 꺼졌다. 마지막 신호가 잡힌 곳은 강 건너편인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기지국’. 당시 경찰 관계자는 “이 기지국은 폰이 강남에 있어도 강북 신호가 잡히기도 한다”며 “정확한 휴대전화 위치는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반포한강공원 인근 한강에서 구조대원들이 실종 엿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대학생 손정민 씨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형 병원 의사, 前 강남경찰서장? ‘허위 사실’

한편 온라인에 떠도는 A씨에 대한 소문은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한때 온라인에서는 A씨의 아버지를 두고 대형 로펌 변호인이나 대형 병원 의사, 전(前) 강남경찰서장 등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모두 허위 사실로, 강남세브란스병원과 경찰청은 “근거 없는 루머”라고 했다.

지난 4일 A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색 아이폰이 민간구조사 차씨에 의해 발견됐지만, 경찰 조사 결과 A씨의 것이 아니었다. 경찰은 A씨의 휴대전화 수색 작업을 이어가면서, 손씨의 휴대전화를 서울경찰청으로 보내 포렌식 분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손씨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를 명백히 밝혀 달라는 요청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3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한강 실종 대학생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제목의 청원은 5일 오후 3시 50분 기준 32만1000여명이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