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넣었다 넣었다, 3점!” “그럼 10점이네? 대박.”

25일 오전 8시 부산 해운대구 인지중학교 대강당. 배드민턴 하는 여학생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아침부터 강당에 가득했다. 라켓으로 셔틀콕을 쳐서 바닥에 놓인 훌라후프 안에 넣으면 1점, 상자에 넣으면 3점이다. 김학현 체육교사가 아이들 수준에 맞게 셔틀콕을 쳐주면 받아치는 방식이다. 10여 명이 줄을 서 자기 차례가 되면 셔틀콕을 친 뒤 팔짝팔짝 뛰면서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강당뿐 아니다. 무용실에선 학생 4명과 교사 2명이 필라테스 영상을 보며 몸을 풀고 있었다. 체력 단련실에선 남녀 학생들이 러닝머신을 타고, 근력 기구 운동을 했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면 학생들이 운동장을 한 바퀴씩 돌고 교실로 향한다. 한 달 전 시작된 인지중의 아침 운동 풍경이다.

지난 13일 오전 부산 금곡중학교 체육관에서 전교생 260여 명이 ‘아침 체인지’ 활동으로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하고 있다.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 운동을 해서 잠을 깨워 수업에 더 잘 참여하게 하고,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며 인성을 키우자는 취지로 부산교육청이 올 초 도입한 활동이다. /부산교육청

인지중 3학년 한소희양은 “7시 40분쯤 학교 와서 20분 정도 운동장 걷고 배드민턴을 하니까 예전처럼 아침에 머리가 멍하지 않고 왠지 잘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며 “1교시 때 눈이 말똥말똥해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3학년 김민제군은 “평소에 체육 시간만으론 운동량이 부족했는데, 아침마다 운동하니까 너무 좋다”고 했다.

인지중의 아침 운동은 부산교육청이 올 초 도입한 ‘아침 체인지(體仁智)’ 정책의 일환이다. 1교시 시작하기 전 운동을 해서 잠을 깨워 수업에 더 잘 참여하게 하고, 친구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인성도 키우자는 취지로 도입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학교 폭력이나 사회성 회복에도 학생들 체육 활동이 중요하다고 봤다. 교실과 책상을 떠나지 못해 약해진 체력을 키워줄 필요도 있었다.

아침마다 1주일에 한 번 이상, 전교생이 20분 이상씩 신체 활동을 하겠다고 신청한 학교에 교육청이 강사비와 간식비 등으로 예산 1000만원을 지원했다. 학교 호응은 교육청이 놀랄 정도다. 지난 2월 50개 학교를 목표로 신청을 받았는데 200여 곳이 신청하더니, 지금은 전체 초·중·고(632개) 중 52%(330개)가 참가하고 있다. 특히 입시 때문에 바쁜 고등학교 141곳 중 87곳(62%)이 신청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해도 예산을 지원해주는데, 보통 3일 이상 운영하고 매일 하는 학교도 많다. 부산 교육계에선 “부산발(發) 아침 운동 열풍이 불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교사들은 “교실에서 잠자는 학생들이 확실히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수연 인지중 교무부장은 “아이들이 늦게까지 학원 가고 게임도 하다 보니 보통 등교해서 1~2교시 때 가장 많이 조는데, 아침 운동을 하니까 대놓고 자는 아이들이 많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부산교육청이 참여 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을 모니터링했더니 “급식 잔반이 줄었다” “늘 깨워도 안 일어나던 아이가 아침 체인지(운동) 하는 날엔 스스로 일어나서 부리나케 학교에 간다” “원래 운동장 한 바퀴 뛰어도 힘든데, 이제 다섯 바퀴 정도 뛸 수 있다” “아이들 사이가 돈독해지고 갈등이 줄었다” 등 긍정적 반응이 주를 이뤘다.

/부산교육청

학부모들이 “왜 옆 학교는 하는데, 우리 학교는 안 하느냐”고 해서 뒤늦게 신청한 학교도 여럿이다. 부산교육청이 제도 도입 전 학부모 521명(중복)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더니 92.2%가 “아침 체육 활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찬성 비율은 중학교 학부모가 95%로 가장 많았고, 이어 고등학교 93.3%, 초등학교 89% 순이었다. 학부모들이 자녀의 공부뿐 아니라 운동에도 관심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한 중학생 학부모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휴대폰을 붙잡고 몇 십 분씩 메시지를 주고받던 아이가 학교에 가서 친구들을 직접 만나고 몸으로 부딪치니 얼마나 좋으냐”며 “휴대폰 사용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만으로 효과가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남자 고교인 동래고등학교는 전교생이 월·수·금 3일간 운동장을 한 바퀴씩 걷고 1교시를 시작하는 것으로 ‘아침 체인지’에 참여한다. 10~30명은 화요일과 목요일에 축구와 배구도 한다. 동래고 3학년 학부모 우남희씨는 “아이가 어릴 땐 운동을 많이 시켰는데 수험생이 돼 학원에 다니느라 운동을 따로 못 해 걱정이 컸다”면서 “학교에서 아침마다 운동장을 걷는다고 하니 너무 반가웠다”고 말했다. 우씨는 “공부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들이 매일 20분이라도 교정을 돌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나무와 꽃을 보면서 사색을 하면 공부가 훨씬 잘될 것 같다”고 말했다. 동래고 아침 운동에는 교사들도 많이 나와 학생들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눈다고 한다.

다른 시·도에서도 부산의 아침 운동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경기도는 ‘등굣길 아침 운동’을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충남도와 세종시 등도 정책을 문의했다. ‘학생 아침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할 분위기다.

아침 운동 활동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다. 춤을 추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좋다. 부산 금곡중은 전교생 260여 명이 ‘플래시몹’ 방식의 단체 체조를 한다. 송수초교는 오징어 게임이나 비석 치기 같은 전통 놀이를 한다.

박치욱 부산교육청 인성체육급식과 장학사는 “1시간씩 운동하면 부담스럽겠지만, 20~30분씩 간단한 운동을 하는 건 교사와 학생 모두 쉽게 다가갈 수 있어 호응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교육청은 아침 운동에 참여한 학교를 대상으로 학생들의 체력과 건강, 인성 등에 어떤 영향이 있는 지 정책 연구도 추진할 계획이다.

‘운동 강조하는 정신과 의사’로 유명한 존 레이티(Ratey)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최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대담에서 ‘학생 운동 효과’를 강조했다. 그는 “아이들은 자기 힘이 세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남을 괴롭힌다”며 “운동을 하면 통제력을 갖게 되고 자기 힘을 느낄 수 있어 폭력을 쓸 필요가 없어진다”고 했다. 이어 “운동이 꼭 스포츠일 필요는 없다. K팝 댄스도 좋은 방법”이라며 “(학생 운동으로) 제일 좋은 건 하루를 ‘그룹 활동’으로 시작하는 것”이라고 했다. 레이티 교수는 “운동을 하면 뇌에서 세로토닌이나 도파민 같은 좋은 물질이 많이 나와 불안감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이런 호르몬들은 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을 통제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