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에서는 대학 졸업생들의 구직난과 기업의 구인난으로 빚어진 ‘채용 미스매치’ 현상의 원인으로 붕어빵처럼 닮은 백화점식 대학 학과 개설, 전공 이기주의에 빠진 교수들의 낡은 교육과정(커리큘럼) 등을 꼽는다. 수십 년째 큰 틀이 바뀌지 않은 서울 주요 대학의 학과 구성을 비수도권 대학들도 너도나도 따라 해 급변하는 산업계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서울대 인문대는 아시아언어문명학부가 하나 추가된 것 외에는 30년 전과 같고, 공대와 사회대도 일부 학과가 학부로 묶이거나 이름을 바꿨을 뿐 그대로다. 그런데 상황이 다른 대학들까지 학과 구색을 맞추려고 따라 한다. 심지어 빅데이터·인공지능·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을 염두에 둔 신산업 분야도 기존 학과의 이름만 바꾸고 교수진과 수업 내용은 그대로인 경우도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은 ‘기초수학’ 과목명을 ‘AI기초수학’으로 바꿨다.
더 큰 문제는 교육 내용이다. 국내 최고 권위의 석학 단체인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소속 젊은 교수들은 “채용 시장 미스매치를 만들어낸 것은 대학의 낡은 커리큘럼과 산학 협력 부족”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재철 성균관대 약대 교수는 “바이오 업계에서는 실질적인 의약품 개발 지식을 갖추고 개발을 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하는데, 현재 생명 바이오 수업은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산업 현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지만 대학 교육은 기초 이론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고 했다.
첨단 현미경 분야 권위자인 박용근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는 “한국의 공대 전공과목은 1970~1980년대에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 만들어진 커리큘럼으로, 남이 만들어놓은 문제와 해법을 똑같이 재현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매일같이 세상에 없던 기술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런 문제 풀이식 수업으로는 산업 발전에 대학이 기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문제를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대학 교육의 수준이 시대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낡은 기준의 획일적 평가로 대학들을 줄 세워 혁신의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우성 포스텍 산업경영공학과 교수는 “혁신적인 강의법이나 산학 협력 강의에 대한 별도 평가 기준을 만들고, 대학 평가에도 이를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는 “교수들이 새로운 과목을 끊임없이 개발할 수 있도록 대학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밤을 새워 연구해서 새로운 과목을 만들고 강의를 해도, 학교에서는 강의 시간만 평가 기준으로 삼아 상당수 교수가 매년 똑같은 원론과 개론 수업만 개설하게 된다”고 했다. 현재의 대학 구조에서는 교수가 기존에 없던 수업을 개설하더라도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이다.
산업 현장 전문가들이 대학 교육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학생 인턴십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삼성전자 출신인 이태우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학부생이 적어도 3~6개월은 현장에서 일을 해봐야 자신이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적성에 맞는 일인지 알 수 있다”면서 “현재의 학기 제도로는 인턴십은 2개월이 최대인 만큼, 휴학을 하지 않고도 인턴십을 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39년 전 제정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수도권 대학의 총정원을 동결한 규제도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현행 법령에선 수도권 대학이 산업 수요가 높은 학과 정원을 늘리려면 다른 학과 정원을 줄여야 한다. 서울의 한 대학 총장은 “자기 학과를 지키려는 교수들 반발이 커 대학 자율의 정원 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교수 임용과 정부 재정 지원 사업에서 논문 비중을 지나치게 크게 따져 각계 전문가들이 대학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며 “산업체 경력을 반영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전공이나 교육과정은 과감히 바꿀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