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가 이번 대선에서 36년 간 이어온 전통을 깨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기로 한 뒤 무려 20만 명이 구독을 끊었다고, 미 공영라디오(NPR) 방송이 보도했다. 이는 이 언론사 전체 유료 구독자의 8%에 해당한다.

이 언론사를 개인적으로 소유한 세계 2위의 부호 제프 베이조스는 지난 25일 워싱턴 포스트 논설진이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는 사설 초안을 작성하자 “전통을 바꾸라”며 대선까지 11일 앞둔 시점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도록 지시했다. 베이조스는 2013년 10월 2억 5000만 달러에 워싱턴포스트를 그레이엄 가문으로부터 사들였다.

NPR은 포스트 내부의 여러 소식통을 인용해, 이 신문에 대한 구독 취소는 28일 오후에도 “계속 증가 중”이라고 보도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신문ㆍ디지털 유료 구독자는 250만 명에 달한다.

지난 25일 워싱턴 포스트의 CEO이자 발행인인 윌리엄 루이스는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선거에서 특정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 표명(endorsement)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선 후보를 지지 표명을 하지 않던 우리의 뿌리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1976년 대선부터 지지하는 대선 후보를 밝혔다. 1988년 조지 부시 부통령(공화)과 마이클 두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민주)가 붙었던 1988년 대선에서만 지지 후보를 내지 않았다. 루이스의 발표는 포스트가 올해 대선뿐 아니라 앞으로의 미 대선에서도 지지하는 후보를 밝히지 않는 “독립적인 신문”으로 자리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문의 기자 조합원 대부분은 이러한 결정이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가 박빙의 차를 보이는 미 대선이 불과 열흘 남짓한 시점에서 나왔다는 점에서, 이런 해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27일 “이 결정이 있은 뒤에, 독자들뿐 아니라 언론계 지도층, 정치인, 포스트 직원들까지 분노가 번졌다”고 보도했다. 일부 포스트 기자들은 이 언론사 웹사이트의 자체 분석 틀을 이용해, 구독을 취소하려고 이 언론사 웹사이트의 고객관리 페이지를 방문하는 횟수가 치솟은 수치를 보여주기도 했다.

베이조스의 이 지시 이후 이 신문의 주요 칼럼니스트였던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케이건과 미셸 노리스가 사임했다. 케이건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에게) 뭘 할지 몰라, 미리 무릎을 꿇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의 칼럼니스트 20명도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하지 않기로 한 것은 “신문으로서 기본적인 논설ㆍ편집상의 확신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하는 칼럼을 냈다. 이 신문의 전(前)편집인 마티 배런은 “민주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은 비겁한 행동”이라고 소셜미디어 X에 썼다.

베이조스는 트럼프의 대통령 재임 중에 서로 상당한 마찰을 빚었다. 트럼프는 워싱턴 포스트의 비판적 보도를 혐오했고, 2019년 소유주인 베이조스의 이혼 및 관련 섹스 스캔들이 보도되자 그를 “제프 보조(Bozoㆍ얼간이)’라고 공개 조롱했다.

그의 아마존은 2019년 미 국방부의 100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계약 수주전에서 “트럼프로부터의 점증하고 명백한 압력” 탓에 졌다며 소송을 제기했었다. 이 계약은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따냈다.

베이조스의 우주 기업인 블루 오리진은 현재 미 항공우주국과 달 탐사와 관련해 수십억 달러짜리 계약을 맺은 상태다.

그러나 베이조스는 트럼프 재직 중에, 워싱턴 포스트의 트럼프 관련 보도에 대해 전혀 간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인이었던 마크 브로클리는 NPR에 “베이조스는 트럼프 보도와 관련해서 단 한번도 움찔한 적이 없다. 그가 지금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브로클리는 “대량 구독 취소 사태는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의 양극화와, 사람들이 이 사안에 쏟는 에너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이렇게 반응할 만도 하다”면서도 “언론사 소유주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좋으나, 품격있게 심층 보도하는 언론사를 소중히 여긴다면 구독 취소는 제 발에 총을 쏘는 격이다. 포스트만큼 퀄리티 보도를 할 수 있는 언론사도 그리 많지 않다. 포스트 보도의 깊이와 범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