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핵무기에 버금가는 위력을 지닌 ‘진공폭탄(vacuum bombs)’을 우크라이나에 사용했다는 주장이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제기됐다. 진공폭탄은 주변의 산소를 빨아들여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 대량살상무기로 통한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지난달 28일 러시아군이 이날 제네바 협약에 의해 금지된 진공폭탄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거대한 피해를 입히려 하고 있다. 그들(러시아)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리투아니아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관도 트위터를 통해 진공폭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을 게시하며 “러시아군이 진공폭탄으로 우크라이나 옥티르카의 석유 저장 시설과 민간인들을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마을이 파괴됐다”고 주장했다.
‘모든 폭탄의 아버지’라는 별명이 있는 진공폭탄은 현존하는 폭탄 중 핵폭탄 다음으로 위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공폭탄의 정체는 열압력탄(thermobaric)이다. 이는 폭발 시 높은 압력을 발생시켜 압력만으로도 상당한 손상을 입히며, 고열과 고압으로 사람의 호흡기를 망가뜨려 살상한다. 일반적으로 재래식 폭탄에 연료 25%와 산화제 75%로 구성된 화약이 들어가는 것과 다르게 진공폭탄은 가연성 물질로 구성된 연료 100%로 구성된다.
지난달 26일 영국 아이뉴스 등에 따르면 진공폭탄은 주변 산소를 이용해 강력한 고온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일반적인 폭탄보다 화염과 높은 압력의 충격파가 오래 유지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건물이 많은 시가지, 벙커, 동굴 등에서 막대한 인명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1960년대 미국과 소련 모두 해당 무기를 개발했다. 이후 2007년 9월 러시아군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진공폭탄을 개발했다. 이는 39.9t에 달하는 압력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개발한 것은 개당 가격이 1600만달러(약 192억7000만원)가 넘는다고 한다. 2017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한 진공폭탄은 약 9.8t의 위력을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이 폭탄은 지상 1.6m 상공에서 폭발한 후 땅에 지름 300m 이상의 구덩이를 만들었다.
방사능 등 부작용을 남기지 않는 진공폭탄은 체첸전쟁에서도 사용된 바 있다. 국제인권감시기구 휴먼라이츠워치(HRW)는 당시 전쟁에서 러시아가 진공폭탄을 사용해 끔찍한 인명피해가 발생했으며, 이후 많은 비정부 조직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고 했다.
앞서 CNN은 지난달 27일 “취재팀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접경도시인 벨고로드에서 진공폭탄을 발사할 수 있는 다연장 로켓 발사대 TOS-1 또는 TOS-1A를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 중 TOS-1의 경우 2000년 초 2차 체첸전쟁에서 사용돼 체첸 수도 그로즈니 전체를 초토화시킨 적이 있다. 당시 단 한번의 공격으로 민간인 37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한다.
이에 국제사회에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의해 계획보다 진격이 더디다고 판단해 해당 폭탄과 같은 파괴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