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부에 있는 트램 안에서 85세 노인이 코로나 백신을 맞고 있다. /AP연합뉴스

“당장 백신 접종을 중단하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

독일 작센주(州)의 한 지역병원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맡고 있는 내과의 디어터(가명)씨는 지난주 발신자 불명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섬뜩한 내용과 함께 퇴근할 때 병원을 나서는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디어터씨는 “순간 머리털이 곤두서고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면서 “경찰에 고발해야 할지를 놓고 병원과 얘기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가 빠르게 늘고 있는 독일에서 백신을 접종하는 의사들이 욕설과 협박은 물론, 살해 위협까지 당하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고 도이체벨레TV 등 독일 언론들이 17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독일은 지난 16일 팬데믹 사태가 시작된 이후 최대인 5만2826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등 매우 심각한 상황에 빠져있다. 이에 따라 독일 정부는 마스크 재착용, 외출 제한과 추가 접종(부스터샷) 대상 확대 등 강력한 방역 대책을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백신 접종을 거부하거나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중에선 정부 정책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의사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티백서(백신 반대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코로나 백신은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기 위한 시도”라거나, “다국적 제약사가 백신을 구실로 위험한 유전자 조작 생체 실험을 하고 있다”는 등의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에릭 보덴디크 작센 의사협회장은 “(백신 접종 의사에 대한) 욕설이나 모욕은 그나마 양호한 수준”이라며 “살해 위협까지 당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2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여성이 폐쇄된 코로나 검사센터 앞을 지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의료진은 심각한 스트레스와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익명의 이메일과 전화를 계속 받으면서 불안 증상이 생긴 사람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베를린에선 백신 접종을 하는 병원이 협박 편지 등에 시달리다 며칠간 문을 닫고, 사설 경비 업체를 고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니더작센 의사협회는 “심지어 ‘총으로 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온다”고 했고, 튀링겐 의사회는 “확인된 것만 25명 이상의 의사가 이런 식의 협박 편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독일 의사협회나 정부는 “실태가 공개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피해 사례 조사도 하지 않고 있다.

백신 반대 움직임은 특히 옛 동독 지역에서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독일의 동서 분열이 코로나 시대를 맞아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작센과 튀링겐주가 대표적이다. 독일의 16주 중 백신 접종 완료율이 전국 평균(67%)보다 낮은 7주 가운데 동독 지역이 5곳이다. 작센과 튀링겐은 각각 57%와 61%로 끝에서 첫째와 셋째를 차지하고 있다.

작센과 튀링겐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당이 높은 지지를 얻는 지역이다. 백신 반대자 중에 극우 등 극단적 정치 이념에 빠진 이가 많다는 분석과 일치한다. 동독 지역에 만연한 외국인 혐오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에 이어, 백신에 대한 음모론과 불신으로까지 연결됐다는 해석이다.

통일 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서독 지역에 비해 경제적 기반이 열악한 탓에, 동독 주민들의 불만은 상당히 높다. 동독 지역은 독일 16주 중 6개, 전체 인구의 약 20%를 차지한다. 이 지역의 2019년 기준 1인당 소득은 서독 지역의 70% 수준이고, 실업률도 1.4배에 이른다. ‘오시(Ossi·동독 사람)’라며 차별당하는 일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메르켈 총리가 지난달 3일 작센-안할트주에서 한 통독 31주년 기념 연설에서 “통일이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다.

동·서독 지역 간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독일 국민 간의 갈등과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ungeimpft(백신안맞음)’ 주제로 백신 접종률이 낮은 구 동독 지역을 ‘수퍼전파자(super spreader)라고 비난하는 글까지 등장했다. 베를린 의사협회는 “환자와 의료진 모두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피로가 심각하게 누적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 자체가 독일 의료 시스템에 상당한 부담”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