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겔싱어 인텔 CEO. /연합로이터

지난 1년 사이 후발 업체의 추격, 고객사 이탈, 기술력 정체 등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인텔이 올해 새 최고경영자(CEO)를 맞이한 후 공격적으로 변신하고 있다. 지난 2월 취임한 인텔의 팻 겔싱어 CEO는 올 들어 수천억~수조원대의 투자 계획을 연달아 발표하고 있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기업·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2일(현지 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 인텔은 이스라엘에 자율주행·반도체 연구개발을 위해 6억달러(약 67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4억달러는 예루살렘에 있는 자율주행 관련 자회사 모빌아이 본사를 자율주행 연구 R&D 기지로 육성하는 데 쓰고, 2억달러는 북부 하이파 지역에 반도체 연구개발 센터를 짓는 데 사용한다. 인텔은 또 이스라엘에 100억달러(11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을 추가 건설한다고 밝혔다.

인텔이 이스라엘에 투자를 집중하는 것은 이스라엘에 기술력이 뛰어난 인재와 스타트업이 많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인구 930만명의 작은 나라지만 1인당 스타트업 수는 세계 1위다. 10억달러 이상 가치를 가진 유니콘 기업만 30곳이 넘는다. 인텔은 2017년부터 자율주행 업체 모빌아이, 인공지능 반도체 업체 하바나, 교통 관련 스타트업 무빗 등을 인수해왔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인텔의 이번 투자를 공격 경영의 일환으로 본다. 안정성을 강조한 전임 CEO와 달리 팻 겔싱어 CEO는 취임 후 기술 역량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막대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3월엔 미국 애리조나에 200억달러(22조4000억원)를 투입해 반도체 생산 시설을 세우고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사업에 본격 진출한다고 밝혔다. 또 최근에는 유럽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며 80억유로(10조80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유럽 각국에 요구하고 있다. 3일엔 미국 뉴멕시코 리오랜초 공장에 35억달러(4조원)를 추가 투자하겠다는 소식을 발표할 예정이다.

인텔의 행보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것이다. 그동안 인텔 CPU(중앙처리장치)를 받아 쓰던 애플은 작년부터 자체 칩을 개발해 제품에 투입하고 있다. 최근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공급 부족 현상도 공격적인 투자를 이끌고 있다. 겔싱어 CEO는 “산업 영역 전반에서 늘어난 반도체 수요를 맞추려면 앞으로 몇 년이 걸릴 것”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조 공장을 재정비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