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1928년 발표한 단편 소설 ‘크툴루의 부름’이 현대 문화 콘텐츠에 미친 영향은 대단히 큽니다. 미지의 고대 문명과 기괴한 외계 존재 ‘크툴루’에 대한 인간의 공포를 다룬 이 소설은 이후 여러 파생 작품이 등장하며 ‘코스믹 호러(우주적 공포)’라는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최근 이 분야 명작으로는 일본의 인기 만화 ‘베르세르크’와 리들리 스콧 감독이 2012년 내놓은 영화 ‘프로메테우스’를 꼽을 수 있죠.

카카오게임즈가 연내 출시를 앞두고 이달 첫 비공개 시험 서비스(CBT)에 나선 ‘크로노 오디세이’ 역시 코스믹 호러 장르의 PC·콘솔(게임용 기기) 게임입니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장르의 게임이라 기대감이 컸습니다. 직접 체험한 크로노 오디세이는 그간 국내 게임에선 느낄 수 없던 새로움이 물씬 묻어났습니다. 엔씨소프트의 ‘리니지’ 같은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MMORPG)을 표방했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세테라’라 불리는 중세 판타지 세계지만 목책으로 세워진 마을 인근 상공에는 이 행성을 침공한 ‘보이드’라는 외계 생명체의 거대 구조물이 떠있습니다. 기형적인 형태의 외계 구조물과 우중충한 날씨, 낮은 채도의 배경과 마주치게 되는 괴이한 형상의 괴물들은 전투 시작 전부터 묘한 긴장감과 압도감을 선사했습니다. 여기에 괴물들에게 빼앗긴 동생의 신체 부위를 찾는 등의 잔혹한 임무(퀘스트)들은 그 자체로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전투를 시작하니 기존 국산 MMORPG 게임에서 더욱 멀어졌습니다. 마우스 버튼만 딸각해서는 외계 괴물을 절대 이길 수 없습니다. 보스 몬스터가 아닌 일반 몬스터도 엇박자 공격을 하는 등 패턴이 까다롭고 공격력이 높아 몇 대 맞으면 죽기 일쑤였습니다. 패턴을 잘 파악하고 타이밍에 맞춰 공격하는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깰 수 없다는 점에서 높은 난이도의 액션 게임을 뜻하는 ‘소울류’에 더 가까웠습니다.

크로노 오디세이는 오는 4분기 출시 예정입니다.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신작 부재로 실적 부진을 겪었는데, 새 도전을 보니 장래가 꼭 어둡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