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고의 연구진들이 모여 있는 카이스트가 최근 ‘토모큐브’라고 하는 국내 업체가 만든 3차원 현미경을 도입했다. 이 현미경 덕분에 카이스트 연구진들은 살아 있는 세포 구조를 실시간으로 보며 연구에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토모큐브의 현미경은 눈을 대는 곳이 없고 일반적인 현미경과는 다르게 생겼다. 기기 안에 세포를 넣으면 빛을 쏘고, 물질을 만나 생기는 빛의 굴절들을 수학적으로 계산해 세포를 3차원 영상으로 실시간 구현한다. 세포의 다양한 단면도 간단한 마우스 조작으로 볼 수 있어 세포를 얇게 자르거나 염색할 필요가 전혀 없다. 박용근(44) 토모큐브 대표는 “기술 발전에도 세포를 보는 방법은 10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현미경이 진화해야 바이오, 제약 혁신도 가능하다”고 했다.
◇세계 연구진들이 택한 현미경
현미경은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류는 세포와 미생물을 관찰하며 생물학 발전을 일궜고 질병에 맞섰다. 그런데 현미경 기술이 발전해도 생명체의 세포를 뚜렷하게 보긴 어려웠다. 세포가 물, 단백질 등 투명한 물질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포를 염색해왔다. 이렇게 하면 세포 구조가 보였으나, 화학 처리 과정을 거친 세포는 곧 죽고 말았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죽은 세포를 보고, 연구 후엔 이를 폐기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현미경의 본고장인 네덜란드의 한 대학 연구진은 최근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질병 치료 목적으로 인체에 주입될 수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 중이었는데, 신체에 적용하려 배양하는 줄기세포를 그 경과를 보기 위해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화학 처리 과정에서 세포 구조가 변할 우려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토모큐브의 3차원 현미경은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실제로 현재 세계 주요 대학 연구진이 토모큐브의 고객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등 해외 대학에서 토모큐브 제품을 도입했다. 글로벌 제약 회사들의 관심도 잇따르고 있다.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장기(臟器) 유사체인 ‘오가노이드’를 만들어 투약하고 경과를 살펴야 하는데 기존의 염색 방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세포가 죽기에 일회성 관찰에 그친다. 하지만 토모큐브 제품으로는 세포 변화를 실시간으로 살필 수 있다. 토모큐브 현미경을 받아본 학계, 산업계 연구진들은 “생생하게 움직이는 세포를 뚜렷하게 볼 수 있을 줄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과학도에게 본 보이려 창업”
토모큐브는 바이오 광학 전문가인 박 대표가 2015년 설립한 업체다. 토모큐브는 자사 기술에 대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말하는데, 이 배경엔 박 대표의 노하우가 있다. 2000년대 중반 당시, 3차원 세포 관찰 분야를 연구하는 이들은 세계를 통틀어도 박 대표를 포함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석사를 마친 후, 2010년 하버드-MIT 연합 의공학대학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해 한국으로 돌아와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로 지내다, 5년 후 토모큐브를 창업했다. ‘오랜 기간 연구해도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분야 연구의 선두 주자였던 만큼, 국내외 다양한 특허들을 등록하며 입지를 다졌다.
과학도들에게 본을 보여야겠다는 마음에 창업을 결심한 면도 있다. 박 대표는 카이스트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우리나라가 부유하려면 기업이 있어야 한다. 회사를 차려라”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문득 ‘나는 해보고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어 직접 창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박 대표는 “학생들에게 떳떳하게 ‘나는 해봤고, 너희들에게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는 선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재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액을 키운 토모큐브는 다음 달 코스닥 상장 예정이다. 토모큐브는 인공지능(AI) 접목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AI가 영상 품질을 더욱 뚜렷하게 만들고, 세포 영상도 알아서 분석한 뒤 요약해 제공하는 식이다. 회사는 이달 초 AI 기반 고급 분석 소프트웨어를 내놓기도 했다. 박 대표는 “창업 초기부터 AI 도입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방대한 양의 세포 데이터를 요약해주면 좋겠다’는 요청들을 듣고 구체화했다”며 “연구를 더욱 편리하게 하고 혁신을 돕는 도구로 거듭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