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는 최근 섭씨 16~30도의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을 출시했다. 한겨울에 보일러보다 실내 온도를 빠르게 높일 수 있는 가전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냉방뿐 아니라 온풍 기능까지 탑재해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는 에어컨을 내놓은 것이다. 기기와 연결한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해 두면 쌀쌀한 아침 시간이나 저녁 때 미리 실내를 따뜻하게 데워 놓을 수 있다.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제품명을 ‘휘센 사계절 에어컨’이라 붙였다. LG전자는 “에너지 효율이 뛰어난 의류 건조기용 히트 펌프로 바람을 데우기 때문에 하루 10시간씩 온풍을 틀어도 월 전기료가 9만원대로 부담이 적은 편”이라고 밝혔다.

가전의 ‘철’이 없어지고 있다. 에어컨을 비롯해 특정 계절에 집중적으로 사용하던 ‘계절 가전’들이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는 ‘사계절 가전’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통상 에어컨과 제습기는 덥고 습한 여름에, 김치냉장고는 김장을 하는 겨울에 사용량이 많은데 다양한 기능을 적용해 상시 활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한 결과다. 계절 가전 비중이 늘면서 특정 시기에 판매량이 몰리는 공식도 깨지고 있다. 에어컨은 주로 연초에 신제품 판매를 시작했는데, 사계절 에어컨의 경우 가을인 10월에 시장에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1년 내내 사용하는 사계절 가전

에어컨과 더불어 겨울까지 영역을 확장한 계절 가전으로 제습기가 있다. 제습기는 여름 중에서도 습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장마철에 주로 사용하기 때문에 에어컨보다 사용 기간이 짧다. 사실상 1년 중 대부분은 집 구석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엔 공기 정화 기능이 들어가면서 1년 내내 제 역할을 하는 가전이 됐다. 제습과 공기청정 기능을 합한 코웨이의 ‘제습공기청정기’는 초미세먼지부터 포름알데히드, 암모니아 등 5대 유해가스를 99.999% 제거하는 ‘다중 공기 청정 필터’를 적용해 봄·가을 등 간절기에도 사용할 수 있다. 겨울에는 실내에서 세탁물을 말리는 용도로도 활용된다.

여름에 판매 매출이 집중됐던 얼음정수기도 사계절 가전으로 변신했다. 쿠쿠홈시스는 얼음 정수기에 끓는 물이 나오는 기능을 더한 ‘제로백(Zero100) 얼음 정수기’를 출시했다. 업체에 따르면 신기능 탑재 영향으로 지난해 4분기 얼음정수기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40%가량 상승했다. 비성수기인 겨울철 판매량은 전체 정수기 시장의 20% 수준이었지만 올 초엔 30%까지 늘었다.

’사계절 가전’의 등장은 소비 심리 둔화, 소비자들의 생활 방식 변화 영향이 크다. 식기세척기, 의류 관리기, 신발 관리기 등 가전 제품 종류가 크게 늘면서 집 안에 제품을 둘 자리가 부족해지자 여러 기능을 모아 놓은 똑똑한 가전 위주로 구입하려는 수요가 커진 것이다. 가전 기업들도 계절별로 제품을 판매하던 것보다 재고 부담을 낮출 수 있다.

◇와인, 밀키트 보관하는 김치냉장고

겨울용 가전으로 인식됐던 김치냉장고는 음식,식자재별로 맞춤 보관해주는 ‘세컨드 냉장고’로 자리 잡고 있다. 위니아는 홈술(집에서 술을 마심)을 즐기는 MZ세대를 공략한 김치냉장고 ‘2023년형 딤채’를 출시했다. 일반 냉장고에선 보관이 힘든 와인을 화이트·레드 등 종류별로 다른 온도로 보관한다. 1인 가구에서 많이 찾는 밀키트의 속재료를 일반 냉장고 대비 2배 이상 신선한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보관 모드도 적용했다. 삼성전자의 비스포크 김치플러스는 뿌리채소, 곡물, 와인 등 23가지 식자재를 각각에 맞는 최적화된 온도로 보관할 수 있다.

겨울철 대표 난방용품인 온수매트도 마찬가지다. 중소 가전 업체 필슬립은 전용 앱으로 섭씨 20~45도 내에서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냉온수 매트를 내놨다. 한겨울뿐 아니라 여름철 열대야에도 사용할 수 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가전 시장이 위축된 가운데 한 기기로 다양한 기능을 누리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사계절 가전’이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