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맘스베리의 다이슨 캠퍼스에 위치한 연구개발디자인(RDD)센터에서 엔지니어가 실험을 하고 있다. /다이슨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차로 2시간 떨어진 맘스베리 다이슨 연구디자인개발(RDD)센터 안에 들어가자 컨테이너로 지어진 2~3평짜리 방이 빽빽하게 들어선 게 보였다. 엔지니어나 과학자 1~2명이 실험을 하는 연구실이다. 이날 방문한 랩에선 앞으로 출시할 신제품인 휴대용 공기청정기 ‘다이슨 존(Zone)’에 관한 실험이 한참 이뤄지고 있었다. 한 실험실에선 엔지니어가 폐 기능을 측정하는 의료용 기기를 마네킹에 연결해 필터 성능을 실험하고 있었다. 다른 방에선 벽에 방음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마네킹에 고무 귀를 달아 음향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 실험실들은 목적에 따라 컨테이너로 짓고 다시 헐어버리는 조립식이다.

먼지 봉투가 없는 진공청소기, 날개 없는 공기청정기와 같은 제품을 만들어내는 다이슨의 혁신은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의 손끝에서 나왔다. 이들은 머릿속에서 생각하는 제품을 3D프린터로 만들어내서 성능 실험을 하고, 제품에 입힐 색상도 직접 만들어서 칠해본다. 실험실 한구석에서 종이 상자를 접고 있는 엔지니어는 신제품을 포장하는 상자를 개발하는 중이었다.

다이슨 캠퍼스 전경. /다이슨

◇다이슨의 혁신은 손끝에서 나와

RDD센터에서 차를 타고 10분쯤 가면 나오는 다이슨 훌라빙턴 연구소에 들어서자 ‘우리는 남들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problems)를 해결한다’는 문구가 벽에 적혀 있었다. RDD센터와 훌라빙턴 연구소에서 만난 엔지니어들은 하나같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리의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헤드폰에 마스크처럼 생긴 공기청정기를 연결한 다이슨 존도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RDD센터에서 만난 앨릭스 녹스 다이슨 신제품 혁신 부문 부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실외 공기 오염이 심각해지는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며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사람들이 친근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걸어다니면서 쓰는 헤드폰에 연결할 생각을 했다”고 했다. 다이슨 존 이전에 오디오 제품을 한 번도 개발한 적이 없지만 청소기를 만들 때 소음 제거를 하거나 한때 개발을 추진하다가 포기한 자동차의 음향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실내 공기청정기를 만들어온 다이슨은 공기 정화 기술을 웨어러블에 적용하는 데 공을 들였다. 훌라빙턴 연구소의 한 연구실에는 둥근 얼굴, 길쭉한 얼굴, 앞이 튀어나온 얼굴을 한 마네킹 머리 수십개가 선반에 쭉 늘어서 있었다. 다이슨 존의 필터 개발을 이끈 비키 깁슨 로빈슨 선임 디자인 팀장은 “지난 5년간 전 세계 다양한 사람의 볼, 턱 선, 눈, 코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수백명의 머리 크기를 테스트했다”며 “연구실 벽에 수백명의 머리를 프린트해서 붙여 놓기도 했는데 그 방에 들어갈 때마다 깜짝 놀랐다”고 했다.

다이슨 공과대학의 모습. 공과대학은 학비가 무료이며 학생들은 제품 개발에 참여하면서 월급을 받는다. /다이슨

◇다이슨엔 재택근무가 없다?

지난 1일 다이슨은 소프트웨어와 커넥티비티에 27억5000만파운드(약 4조3255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다이슨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다이슨의 모든 제품은 ‘마이 다이슨’이란 애플리케이션으로 작동이 가능할 정도로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데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이날 다이슨 존을 착용하고 스마트폰에 마이 다이슨 앱을 깔자 정화되고 있는 공기의 질이나 음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로빈슨 팀장은 “다이슨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다 잘 만들 수 있는 것은 전 직원이 실험실과 사무실에 나와 협업을 하기 때문이다”라며 “나는 하루에도 소프트웨어, 전자기술, 오디오, 디자인 전문가 등 100명 이상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다이슨엔 재택근무가 없냐”고 묻자 “다이슨은 재택근무의 힘을 믿지 않는다, 실험실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헤드폰에 휴대용 공기청정기능을 더할 수 있는 다이슨 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