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처음 발굴된 뒤 17년간 인류 진화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고대 인류 ‘데니소바인’의 얼굴이 드디어 밝혀졌다. 중국 동북부 하얼빈에서 발견된 고인류의 두개골이 데니소바인으로 확인됐다.
중국과학원과 허베이지질대 공동 연구진은 두개골의 단백질과 DNA 유전자를 분석해 하얼빈 두개골이 최소 14만6000년전 살던 데니소바인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19일 밝혔다. 지금까지 데니소바인의 흔적은 뼈 조각과 치아가 전부였다. 연구 결과는 이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와 ‘셀(Cell)’에 게재됐다.
현생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유라시아에 이주하기 전, 먼저 정착한 인류들이 있었다. 멸종한 인류의 사촌들인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이다.
네안데르탈인은 아프리카를 떠나 40만년 전 유라시아에 정착했다. 데니소바인은 2008년 손가락뼈와 어금니가 처음 발견된 시베리아의 동굴 이름을 딴 고생 인류로, 35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에게서 갈라져 아시아에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이 이번에 분석한 두개골은 2021년 발견됐다. 당시 전문가들은 눈꺼풀 부분이 크고 두껍고, 위턱이 크다는 점에서 데니소바인의 두개골로 추정했지만, 뼈와 치아에서 DNA를 충분히 추출하지 못해 유전적 증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번 연구진은 두개골 자체에서 DNA를 찾는 대신, 어금니에서 채취한 0.3㎎의 치석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치석은 치아에 물질이 쌓여 굳은 것으로, 뼈나 치아보다 양은 적어도 DNA가 있다. 특히 돌처럼 단단해 그 속의 DNA가 장기간 안정적으로 보존될 수 있다.
연구진은 하얼빈 두개골 치석에서 나온 DNA를 기존 데니소바인 뼈, 치아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비교한 결과, 유전적으로 일치했다. 하얼빈 두개골이 데니소바인임을 과학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세포핵 밖에 있는 에너지 발생기관인 미토콘트리아는 별도로 DNA를 갖고 있다. 미토콘트리아는 난자를 통해 후손에 전달되므로 모계 유전자를 추적하는 데 주로 쓰인다.
연구진은 치석 DNA 외에도 두개골에서 추출한 단백질 95개도 분석했다. 그 결과, 티베트와 대만에서 발견된 데니소바인 특유의 단백질 변이를 포함해 세 가지 고유 변이를 확인했다. 현생 인류이나 네안데르탈인과는 달랐다.
이번에 분석한 하얼빈 두개골은 형태가 매우 잘 보존돼 있어, 조각난 화석으로만 알려졌던 데니소바인의 생김새를 보다 구체적으로 복원할 길이 열렸다. 이전까지 데니소바인은 손가락, 턱뼈, 치아처럼 조각난 상태의 화석이나 DNA 조각으로만 알려져 있었고, 그들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는 단순히 하얼빈 두개골의 정체를 밝힌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중국 달리, 진뉴산 등에서 발견한 고인류 화석이 데니소바인 계열일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참고 자료
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126/science.adu9677
Cell(2025),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5.05.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