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가 공개한 양자 컴퓨팅 칩 '마요라나 1'/MS
구글 양자컴퓨터 칩 윌로우./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가 양자 컴퓨터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로 ‘위상 큐비트’를 활용한 양자 칩 ‘마요라나 1(Majorana 1)’이 공개되면서, 구글과 IBM이 주도하던 양자 컴퓨터 경쟁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지난 19일(현지 시각) 공개된 마요라나 1은 손바닥만 한 크기다. MS는 이번에 위상 큐비트 8개를 탑재한 시제품을 공개했지만, 최종적으로는 큐비트 100만개를 한 손에 들어올 정도의 작은 칩 하나에 담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MS는 “큐비트 100만개 이상 탑재는 ‘양자 컴퓨터 상용화’ 시작 시기로 본다”며 “이번 칩 개발로 양자 컴퓨터 시대가 몇 십년이 아니라 몇 년 안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위상수학 원리로 큐비트의 불안전성 해결

기존 컴퓨터는 전자가 없거나 있는 것을 0과 1, 즉 1비트(bit) 단위로 표현한다. 이에 비해 양자 컴퓨터의 단위는 0과 1 상태가 중첩된 큐비트이다. 미시세계에 통하는 양자역학에서는 물질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 중첩된 상태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 컴퓨터는 ‘꿈의 컴퓨터’로 통한다. 일반 컴퓨터가 2비트이면 00, 01, 10, 11 네 가지 중 하나가 되지만, 2큐비트는 네 가지가 동시에 다 가능하다. 만약 큐비트가 300개라면 우주의 모든 원자 수보다 많은 2의 300제곱 상태가 가능해 컴퓨터 능력이 획기적으로 커진다. 구글은 이미 2019년 단 53큐비트 양자컴퓨터로 슈퍼컴퓨터가 1만년 걸릴 문제를 3분 만에 해결했다.

양자 컴퓨터는 이론적으로는 큰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큐비트의 불안정성이라는 문제 때문에 실질적인 활용이 어려웠다. 큐비트는 외부 환경의 미세한 변화에도 영향을 받아 오류가 발생하기 쉽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오류 보정 기술과 많은 추가 연산 자원이 필요했다.

MS는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위상 큐비트를 개발해 왔다. 위상 수학은 물체의 형태가 변형되더라도 근본적인 구조가 유지되는 특성을 연구한다. 예를 들어, 도넛과 커피 컵은 표면에 구멍이 하나 있다는 공통점 때문에 위상적으로 동일하다고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위상 큐비트는 양자 정보가 위상적 특성에 의해 보호돼 외부 영향에 강한 내성을 가진다. 일종의 보호막이 있는 큐비트라고 볼 수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한 핵심 기술은 새로운 종류의 물질인 ‘위상전도체(topoconductor)’다. 위상전도체는 반도체와 초전도체의 특성을 결합한 물질로, 반도체처럼 전류를 조절할 수 있으면서 초전도체처럼 전자의 움직임을 왜곡 없이 유지해 큐비트를 더욱 안정적으로 만들 수 있다. 마치 방음벽이 있는 도서관처럼 외부 소음에 방해 받지 않고 정보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MS 연구진은 인듐 비소화물 반도체와 알루미늄 초전도체를 조합해 위상전도체를 만들었다. 그리고 극저온과 자기장 조건을 조작해 ‘마요라나 제로 모드’라는 입자를 생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 초전도체에서는 전자가 쌍을 이뤄 이동하지만, 마요라나 모드에서는 쌍을 이루는 입자가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다. 따라서 하나의 입자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하나는 영향을 받지 않아 외부 교란에 강하고, 양자 정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손영익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기및전자공학부 교수는 “이론적으로만 가능할 것이라 여겨졌던 방식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은 놀라운 일”이라며 “마요라나 방식의 큐비트는 맥킨지 리포트에서 상용화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 양자 컴퓨터 플랫폼 다섯 종류에도 들어가 있지 않을 정도로 어려운 기술이었지만, 이번에 이를 실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MS는 디지털 신호를 활용한 간단한 오류 보정 방식도 도입했다. 마요라나 입자와 연결된 나노와이어의 양자 상태를 마이크로파로 읽어내고 조정한다. 기존 양자 컴퓨터에서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큐비트를 미세하게 조정해야 했다. 이를 통해 기존 방식보다 오류를 감지하고 보정하는 과정이 훨씬 간단해졌으며, 단 한 번의 측정으로 오류율 1% 이하의 정확도를 기록했다.

MS는 “기존 양자 컴퓨터는 오류를 보정하기 위해 복잡한 알고리즘과 다량의 추가 큐비트가 필요했지만, 마요라나1은 물리적 특성 자체가 오류를 억제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높고 확장성이 뛰어나다”며 “수십 년이 아닌 수년 안에 의미 있는 문제를 해결할 양자 컴퓨터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글·IBM과 다른 길을 걷는 MS

그동안 양자 컴퓨터 개발을 주도해온 구글과 IBM은 초전도 큐비트를 쓰고 있다. 초전도란 특정한 물질이 극저온 상태에서 전기 저항이 0이 되어 전류가 손실 없이 흐르는 현상이다. 초전도 상태에 있는 전자를 이용해 양자 컴퓨터에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다.

초전도 큐비트는 현재까지 가장 널리 연구되고 사용되는 방식이지만, 빛이나 진동과 같은 외부 환경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 오류 보정을 위한 알고리즘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구글을 비롯한 기업들은 큐비트 수를 늘리면서 양자 오류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구글이 공개한 105큐비트 초전도 양자 칩 ‘윌로우’는 큐비트 수가 많아질수록 오류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계산 속도로는 세계 2위인 슈퍼컴퓨터 프런티어가 10자년(秭年, 1자년은 10의 24제곱년) 걸리는 계산을 5분 이내에 풀었다. IBM은 지난해 11월 133큐비트 프로세서를 세 개 연결한 399큐비트 양자 칩 ‘퀀텀 헤론’을 공개했다. 2033년까지 2000큐비트 양자 컴퓨터를 개발할 계획이다.

이번에 MS가 발표한 양자 칩 마요라나 1은 큐비트 8개만 탑재해 큐비트 수만 보면 구글, IBM의 칩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MS 발표가 지금까지 큐비트 수를 가지고 우열을 가렸던 양자 컴퓨터 경쟁 체제를 바꿀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손영익 KAIST 교수는 “위상 큐비트는 한번 성공하면 그다음에 큐비트를 늘리는 게 훨씬 쉽다”며 “1큐비트라도 제대로 만들면 100만 큐비트로 늘리는 건 시간 문제”라고 설명했다.

조지 부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교수는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큐비트 수로 개발 상황을 측정해 왔고, 이에 따르면 MS는 다른 기업보다 뒤처진 상태였다”며 “하지만 MS는 주변 환경의 간섭에 더 회복력이 강한 시스템을 개발해 장기적인 게임에 집중했다”고 했다.

한국은 표준과학연구원 주도로 초전도 방식으로 20큐비트의 양자 컴퓨터를 개발했고, 현재 큐비트 수를 늘리고 있다. 성은정 표준연 양자국가기술전략센터장은 “이미 구글과 IBM 등 초전도 방식을 이용한 성공 사례가 나왔고, 국내에 초전도 기술 기반이 있다”며 “연구실 단위에서 이온트랩과 고체 점결합, 광자 방식 등을 연구하고 있지만, 위상 방식의 경우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자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위상 큐비트의 실질적인 구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앞서 2021년 MS와 협력한 네덜란드 델프트대 연구진은 마요라나 상태를 생성하는 실험을 구현했다고 밝혔으나 논문을 철회한 바 있다. 이번 연구진 역시 이번 네이처 논문을 통해 “아직 명확한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라며 “이 연구를 기반으로 위상 큐비트가 확장될 경우 실제 양자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지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4-084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