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불교 미술을 전공한 한 미대생의 졸업 작품이 화제였다. 이 학생은 2300시간 이상을 들여 ‘미륵하생경변상도’를 완성했다. 밑그림 작업에만 2개월이 걸렸다. 이후 채색과 디테일 추가 작업을 통해 그림이 완성돼 갈수록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가 느낀 성취감이 일종의 ‘러너스 하이’가 아닐까.

러너스 하이는 달리기를 하는 사람이 극한의 고통 뒤에 느끼는 도취감이다. 러닝 외에도 축구나 사이클 같은 장시간 지속하는 운동이라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일도 러닝과 유사한 데가 있다. 나의 경우 보통 하나의 단편소설을 완성하기까지 두 달 정도가 소요되는데, 일단 새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달리기는 시작된다.

구상할 때는 새 문서를 열고 빈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일이 대부분이다. 산책하거나 하염없이 유튜브 영상만 보고 있기도 한다. 이 예열 단계에서는 두려운 마음이 가장 크다. 쓰는 과정이 얼마나 괴로울지 알기 때문에 한 문장을 쓰기조차 쉽지 않다. 머릿속으로 얼추 큰 그림을 그리고 첫 문장을 쓰면 드디어 레이스를 시작할 준비 운동은 마친 셈이다.

문장 하나로 첫발을 떼면 이때부터는 주저 없이 달려나가야 한다. 처음 잡았던 방향이 옳은 것인지 틀린 것인지 아직은 알 수 없기에 일단 달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한참 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이제 좀 되는 것 같은데’ 하는 순간이 온다. 그 느낌을 되도록 오래 유지하며 초고를 써 나가야 한다.

초고를 완성하면 거의 끝났나 싶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자신이 엉뚱한 방향으로 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때부터가 본격적인 달리기의 시작. 가장 괴로운 단계이기도 하다. 퇴고에는 정해진 횟수가 없고, 작가 자신이 손을 떼야만 끝난다.

물론 끝까지 달렸다고 해서 누구나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달리는 과정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고, 포기의 유혹이 있으며, 견딜 수 없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괴로움을 알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러너스 하이를 맛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